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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일기

임건순 씨 당신은 읽지 마세요 나는 읽을 테니까

https://www.hankyung.com/opinion/article/2021061472881

 

[임건순의 제자백가] 사마천의 '사기'는 가라

[임건순의 제자백가] 사마천의 '사기'는 가라, '사기'의 임금 개인에 대한 도리·은혜보다 자유·자존을 위한 용기와 결단을 얘기한 서구 페리클레스의 시민정신을 배워야 임건순 < 동양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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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건순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나는 모른다. 이 사람보다 동양 고전에 대해서 더 잘 안다고 자부할 자신도 없다. 자부할 자신이 없다고 해서 할 말을 못한다는 것도 아니니 이렇게 별 것 아닌 잡문을 쓴다. 나는 우선 임건순이라는 이 작자의 얼굴이 짜증난다. 그리고 이 작자의 말하는 태도가 재수없고, 그 말하고 있는 내용이 역겹고, 그것을 통해서 얻으려고 하는 것이 뻔히 눈에 보여서 같잖다. 특히 사마천의 사기에 대해서 써놓은 글을 뭐라고 써 놨는지 이해가 안 돼서 세 번 네 번 정도 더 읽었는데, 처음에는 이 사람한테 화가 났다가, 두 번째는 내가 이 사람보다 동양 고전에 대해서 모르니 당장에 반박할 말이 튀어 나오지 못한다는 것에 화가 났다가, 세 번째는 동양 고전을 이 사람보다 모르면 이 사람의 글을 전혀 반박할 수 없다는 것인가 머리가 아팠다가, 네 번째는 이 사람의 글 속 논리가(물론 다른 글은 또 안 그렇겠지만) 하도 빈약한 것에 대해서 이제서야 짚어냈다는 허탈감에 코웃음이 나왔다. 긴 글 읽는 것을 싫어하실 분들을 위해서 짚어 드리자면 여기. 

 

진짜 역사가는 주관을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를 살펴 보여주며 유사한 문제에 대처할 수 있도록 유용한 방침을 도출하는 데 애써야 한다. 동양 역사의 아버지와 서양 역사의 아버지 중 누가 유능한 의사에 가까울까? 

 

 임건순 이 사람은 세상에 '주관을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를 살펴 보여주는 역사'가 가능하다고 생각해서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걸까? 대학교 학부까지 갈 것도 없이 중학교 국사 수업 첫머리에서도 우리가 쓰는 '역사'라는 말에는 '사실'로서의 역사가 있고 '기록'으로서의 역사가 있다고 가르친다. '사실'로서 역사가 존재하지만 그 '사실'도 어떤 형태로든(문자로든 구전이든) 뭔가 '기록'으로 남아 전해지는 과정을 거쳐야만 '역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록을 전하는 것은 역사가를 포함해서 당대를 살아가는 사회와 사람들이 맡게 된다. 내가 아무리 임건순 저 작자보다 동양 고전을 많이 읽지도 못했고, 박식하지는 못해도 이것 하나만은 내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세상에 '주관을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를 살펴 보여주며 유사한 문제에 대처할 수 있도록 유용한 방침을 도출'하는 그런 역사가란 존재하지 않는다.

 

 임건순은 본인의 글에서 사마천의 한계가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를 보면 드러난다고 하면서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에 대해서 이렇게 쓰고 있다. "이 두 사람의 책을 보면 주관적 윤리의 반복이 아니라 사실들에 대한 건조한 접근이 보인다. 인간 의지를 중심으로 한 인물 중심의 서술보다는 구체적 사실을 나열하면서 인물들이 엮어지게 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이념을 바탕으로 인물을 취사해 도덕적 훈계를 던지지 않고 거리를 둔 채 말하며, 사건의 객관적 진행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인간 의지와 무관한 역사 전개의 내적 필연성이 무엇인지 살피려 한다."고 적고 있다. 나는 임건순 이 사람이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쓴다'라는 말에 대해서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세상에는 도덕적 훈계를 던지지 않고 거리를 두지 않는 척하면서 실은 자신의 주관을 상당히 개입시켜서 읽는 사람을 혼동하게 만드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어 왔다. 괜히 서술 트릭,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라는 말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 사람의 글에서 나오는 논리는 상당히 얄팍하다. 처음에는 남송의 엽적이라는 사람이 정통 유가와 다른 역사철학과 경전관을 갖고 있었다고 소개하고, 사마천의 사기를 비판했다면서 이러이러한 내용이다, 라고 서술하더니만 곧장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로 넘어간다. 사마천과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와의 비교로 넘어가는가 싶더니, 이어서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와 사마천 중에 누가 더 유용한 의사냐 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의 글에는 사마천의 사기가 어떤 점에서 비판받을 만한 것인지,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가 어떤 점에서 사마천의 사기와 서술 관점을 달리했는지, 그들이 서술한 사건은 어떤 점에서 실제 역사와 달랐고 왜 그런 서술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일언반구 소개도 없다. 그냥 사기에 대해서 남송의 엽적이 이러이러하다고 비판했다,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는 이러이러하게 역사를 서술했다, 자 이제 누가 더 유용한 의사냐. 

 

 임건순은 '도덕적 훈계'를 던지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사기가 도덕적 훈계를 던지는 '꼰대' 같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지만, 정작 그런 본인도 사기가 대체 뭘 가지고 도덕적으로 훈계를 하더냐, 라는 말에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 답을 내놓지 않고 질문만 던져 놓는다고 본인이 중립적인 사람이 아니다. 세상에는 무슨 대답을 할지 고민이 되는 질문이 있는가 하면, 딱 봐도 무슨 대답을 듣고 싶은 건지 감이 오는 질문이 있다. 읽는 사람이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이나 외면하려 했던 점을 딱 짚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말만 죽 늘어놓은 글은 읽으면 짜증난다. 상대가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겠다도 아니고 너는 이렇게 생각해야만 해 이게 맞는 거야, 라는 우격다짐이 훤히 보인다. 이런 임건순의 태도는 유튜브 같은 데서 보이는 싸구려 설문조사와 똑같게 느껴진다. 빤히 무슨 대답을 듣고 싶은지 보이는 같잖지도 않은 질문들을 기지선다형으로 설문조사랍시고 올려놓는 인간들.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이 한 명이어도 그 응답이 100%가 되는 게 유튜브 설문조사다. 글쓰는 사람이 이러이러하다고 딱 답을 대놓고 내놓지 않아도 이러이러하게 생각하도록 사실 소개를 교묘하게 바꿔서 써 놓고 저자 자신이 원하는 대답이 나오도록 하는 것도 엄연히 임건순이 말하는 주관적 윤리의 반복이고, 객관적인 것과는 일단 거리가 멀다. 진짜 이렇게 말하면 안 되지만 아주 지랄을 하세요 지랄을. 

 

 임건순은 "사마천의 사기가 동양에서 '성역'이었지만 비판이 없는 게 아니었다"고 그걸 뭔가 대단한 것처럼 쓰고 있다. 동양에서 뭔가 '성역'은 비판조차 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것이었는데 의외네? 라는 식으로. 맹자부터가 "책을 그대로 믿는 것은 책을 아예 안 읽느니만 못하다"고 했는데(임건순 본인이 동양 고전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안다면 맹자도 당연히 읽으셨으리라) 사마천의 사기가 처음 세상에 나오고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에 왜 비판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한고조가 백수 시절 국솥을 대놓고 박박 긁으면서 자신을 무시했던 형수에 대한 뒤끝으로 형수의 아들을 '갱힐후'(국솥 긁는 제후)라는 모욕적인 작호를 주어 복수한 것을 사기 본기에서 "도량이 넓었다"는 말하고 모순된다고 하는 지적부터, 사기의 기록에 의아한 점이 많다고 쓴 사람들은 천년 동안 한두 명이 아니었고, 그 중에는 동사강목의 저자 사마천도 있었다. 사마천 본인도 자신의 책을 무조건 있는 그대로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사실대로 적은 기록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헤로도토스나 투키디데스도 마찬가지다.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의 그리스 침공이나 그에 맞선 그리스 세계의 투쟁을 '자유'를 위한 투쟁이라고 해석하면서 그리스 '문명' 세계를 침공한 페르시아 제국을 자유를 억압하는 압제적인 전제군주정 '야만' 세계로 그렸지만, 정작 그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왕은 '개인의 종교와 신앙을 강압적으로 개종시키지 않겠다'며 노예로 잡혀 있던 유대인들을 해방시킨 군주였다. 중화 문명 바깥의 존재(여기에는 우리도 포함한다)들을 '이적'이라고 낮추며 대충 기록했던 사마천보다 '그리스어'를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리스 문명 '세계' 바깥의 존재를 모조리 '야만인(바르바로이)'라고 부르며 이분법적으로 대했던 헤로도토스가 두 수나 높게 평가되어야 할 이유를 나는 모르겠다.

 

 세상에 주관을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를 살펴 보여주며 유사한 문제에 대처할 수 있도록 유용한 방침을 도출하는 그런 역사가가 존재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적어도 역사가로서는 사마천이나 헤로도토스나 최대한 그렇게 하려고 했다. 스티븐 킹의 말을 빌리면 "모든 독자를 언제나 만족시킬 수는 없고 일부 독자도 언제나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일부 독자라도 가끔이라도 만족시킬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 여기에서 '독자를 만족시킨다'를 '사실을 기록한다'고 써 넣으면 임건순처럼 사마천이나 헤로도토스나 투키디데스 어느 쪽의 우열을 가릴 이유가 무색해진다. 오히려 임건순처럼 주관을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를 살펴 보여주며 유사한 문제에 대처할 수 있도록 유용한 방침을 도출하는 것이 진짜 역사가라고 하는 것이 임건순이 그토록 싫어하는 티를 내는 '도덕적 훈계'가 아닌가? 쟤는 이러는데 너는 왜 이렇게 못 하냐면서 어느 한쪽을 지나치게 이상화하고 어느 한쪽을 그와 대조되게 깎아 내리는 것을 보면서 나는 임건순이라는 작자의 인간성까지 의심이 들었다. 다른 집 자식하고 자기 집 자식을 비교하는 막장 부모와 겹쳐 보인 탓이다. 역겹다 라는 말 이외에 그걸 달리 표현할 수가 없다. 

 

 당의 유지기가 사통에서 사마천의 사기를 비판한 것도, 남송의 엽적이 사마천의 사기를 '지나치게 인간 중심'이라고 비판한 것도 뒤집어 생각하면 '이거 이래도 되나?' 라는 문제의식을 이미 임건순이 그토록 찬양해 마지않는 서구 근대주의 역사학자 이전에도 동양의 학자들도 충분히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비판들이었다. 성역이었지만 비판이 없었던 게 아니라, 애초에 성역이라고 해서 무조건 비판을 안 해서도 안 된다는 게 유가의 생각이었다. 군주정 시대 군주 앞에서도 목 날아갈 각오 하고 간언하던 게 전근대 동양의 유생들이고 관리들이었다. 임건순도 그런 견지에서 고대 사가와 그 역사 저술에 대한 '재해석' 내지 '비판'이라고 인정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임건순의 말처럼 사마천이 헤로도토스보다 두 수 아래라느니, 사기를 읽지 말고 서도서기(西道西技)하자느니 하면서 사마천의 사기를 전면적으로 부정해 버릴 근거는 되지 못한다. 이런 사람들은 19세기 오리엔탈리즘에 빠져 있던 구미 유럽인들이 거죽만 동양인의 것으로 뒤집어 쓰고 환생한 것 같은 내용을 가져와 사람들 앞에 내세운다. 

 

 "'구체적 사실 속에서 인물이 엮어지는 춘추, 좌전과 달리 지나치게 인물 중심의 사서'로 정통의 사법을 훼손시켰다."

 임건순 씨, 그래서 뭐가 문제라는 건데요? 

 

 "주관과 임의성이 지나치게 개입돼 실록의 정신을 위배하고 역사의 진실을 협소하게 한정시켰다."

 임건순 씨, 그래서 뭐가 잘못됐다는 건가요?

 

 사건을 만들고 또 전개시켜 나가는 게 인간인데 어떻게 인간이 역사 기록의 중심이 안 될 수가 있나. 주관과 임의성이 지나치게 개입되었다는 것도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애초에 객관적인 역사책, 임의성을 개입시키지 않은 역사 기록은 세상에 없다. 임건순이 예시로 들었던 남송의 엽적이 사마천의 사기를 비판하면서 비교 대상으로 가져왔던 춘추, 좌전도 정통 사법과는 거리가 멀다. 유지기의 사통에서는 춘추좌전도 엄연히 비판의 대상이다. 춘추좌씨전을 읽어 보신 분들은 아실 테지만 춘추좌씨전은 결코 '구체적 사실 속에서 인물이 엮어지는' 책이 아니다. 임건순은 '주관과 임의성이 지나치게 개입'된 역사 서술을 비판하겠다고 겨우 남송의 엽적 한 명 들고 나와 사기를 비판하고 있지만, 정작 사기와 대조 대상이 되는 좌전, 그리고 춘추야말로 임건순이 그토록 싫어해 마지 않을 '주관'과 '임의성'으로 점철되어 있다. 공자가 춘추를 편찬한 목적 자체가 처음부터 역사적인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도덕적 '포폄'에 있었으니 말이다. 춘추는 조금 과장 보태면 어느 언론사 집필진이 당대의 사건에 대해 자기 기준에서 평가한 칼럼 모음집만 후대에 남아 전해진 것과 같다. 그 칼럼들에 담긴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설명을 붙인것이 좌씨전이고 공양전이고 곡량전이라는 것들이다.

 

 칼럼들은 애초에 집필하는 사람의 주관이 강하게 들어가 있다는 점에서 역사 서술과는 거리가 멀고 방향성도 다르다. 애초에 역사 기록의 정확한 전달을 목적으로 쓴 기록이 아니었던 춘추, 좌전을 가져다 비교 대상으로 삼으면서 사기를 '주관과 임의성이 지나치게 개입되어 있다'고 비판하는 것은 설득력도 논리도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건 임건순이 가져온 엽적이라는 사람의 한계인가, 아니면 엽적이라는 사람을 가져다 인용한 임건순 본인의 한계인가 나는 그것까지 여기서 일일이 말하지 않겠다. 그럴 만한 깜냥도 나에게는 없다. 

 

 사이비 종교나 터무니없는 음모론들이 요한계시록을 내세운다고 해서 요한계시록이 싸구려 삼류 종말론이 아니듯이 사마천의 백이숙제열전도 결코 세상에 정의라는 게 어디 있느냐, 라고 자조하는 허무주의가 아니다. 백이열전에서 사마천이 남긴 평은 정확히 다음과 같다. 

 

 어떤 사람은 "하늘의 도는 치우침이 없어서 늘 선한 사람을 돕는다"라고 했는데, 백이와 숙제를 선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인덕을 쌓고 그렇게 선하게 행동했는데도 굶어 죽다니. 그리고 70명 제자들 가운데 공자가 유독 안연 혼자만을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했지만 안연도 평생을 곤궁 속에서 살았고 술지게미 같은 음식도 마다하지 않다가 끝내 요절했다. 하늘이 선한 사람에게 보상한다면서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도척은 날마다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사람 고기를 회를 쳐서 먹으며, 포악한 짓을 멋대로 저지르고 수천 명의 패거리를 모아 천하를 마구 휘젓고 다녔지만 결과는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 이것은 무슨 덕을 따랐단 말인가. 이런 것들은 크게 드러난 사례들이다. 근세에 이르러서도 그 품행이 도를 벗어나고 오로지 금기시하는 일만 저지르고도 평생토록 즐겁게 살고 부귀가 대대로 끊이지 않는 자들이 있다. 땅을 골라서 밟고 때를 봐가면서 말을 하고 지름길로 가지 않고 공정하지 않으면 분을 터뜨리지 않았는데도 재앙을 만난 사람들은 수를 헤아릴 수 없다. 나는 몹시 곤혹스럽다. 이런 게 '하늘의 도'라면 그건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공자가 "길이 다르면 서로 도모하지 않는다."라고 했듯 각자의 뜻에 따를 뿐이다. 그래서 "부귀라는 것이 추구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채찍 드는 천한 일이라도 내가 하겠지만 추구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따르겠다."고 한 것이다. 날이 추워진 뒤에라야 솔과 잣이 뒤늦게 시듦을 알게 되고, 세상이 온통 흐린 다음에야 깨끗한 선비가 나타난다. 누구는 저것을 중시하고 누구는 이것을 경시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공자는 "군자는 죽은 뒤에 명성이 드러나지 않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고 했고, 가의는 "탐욕스러운 자는 재물에 죽고, 열사는 명성에 죽고, 과시하기 좋아하는 자는 권세에 죽고, 보통 사람은 목숨을 탐한다"고 했다. 빛이 나는 물체는 서로를 비추고, 같은 종류의 물건은 서로를 이끈다.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 성인이 있어야 만물이 뚜렷해진다. 백이와 숙제가 비록 인한 사람들이기는 했지만 공자가 있어서 그 이름이 더욱 드러난 것이다. 안연이 공부에 독실하기는 했지만 천리마 꼬리에 붙음으로서 그 행동이 더욱 뚜렷해졌다. 동굴 속의 선비들의 진퇴도 이와 같았지만 그 명성은 연기처럼 사라져 입에 오르지 않았으니 서글프구나. 골목에 사는 보통 사람으로 덕행을 갈고 닦아 명성을 세우고자 한다면 청운의 선비에게 붙지 않고서야 어찌 후세에 명성을 남길 수 있겠는가. 

 

 사마천이 하늘의 도가 옳은가 그른가를 말한 뒤에 한 말은 세상에서 말하는 선인이라 불리는 사람도 덕행을 갈고 닦아 명성을 세우고자 하는 사람도 결국은 그러한 사람들을 발견하고 기억해서 전해줄 만한 사람들이 있어야만 그 이름을 세상에 전할 수 있다고 하는 이야기다. 이건 그렇게 덕행을 갈고 닦아 명성을 세우고자 했던 사람들, 선한 사람이라 불릴 만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까지도 이름을 기억하고 전해 줄 '청운의 선비'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바로 자신이고 지금 그렇게 하겠다는 자부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건 어떠한 중요한 사건도 기록되어 전해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역사의 본질을 드러낸 것이라고 하겠다. 자신이 보고 들은 선인과 악인의 이야기를 빠짐없이 기록해서 전하겠다는 역사가의 일종의 '전도 선언'인 셈이다. 저딴 식으로 폄하될 성질의 것은 결코 아니고, 누군가와 우열을 비교당해야 할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