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옛날 백성들에게는 세 가지의 병폐가 있었는데 지금은 아마 그것마저 없어진 듯하다. 옛날에 뜻이 거창했던 사람은 작은 일에 구애되지 않고 주견대로 했으나, 지금의 뜻이 거창한 사람은 주견도 없이 함부로 한다. 옛날에 자긍심이 강한 사람은 엄격하고 모가 났으나 지금의 자긍심 강한 사람은 성내고 싸움이나 한다. 옛날에 어리석은 사람은 정직했으나 지금의 어리석은 자는 속이기만 할 뿐이다."
(김형찬 옮김 논어 양화편16)
제목을 저리 거창하게 꼽기는 했지만 나도 '찌질한 인간'에 포함되는지라 저 제목으로 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는 쓰는 지금도 의문을 갖고 있다. 누군가는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하고,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가장 현명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아이러니가 세상에 존재하는 한 찌질한 인간들은 찌질한 인간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살다 가겠지.
https://imnews.imbc.com/replay/2023/nwdesk/article/6441881_36199.html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30227/118099042/1
불매운동이 한창 열기를 올리던 시절에도, 나는 그렇게까지 불매운동이라는 것에 매달리지는 않았다. 내 서가에는 그 불매운동이 한창이었던 시절에도 그 이후에도 언제나 돈 모아서 사들인 일본 책들이 많이 있었고(주로 일본 역사와 관련된 책인데 한국에는 번역본이 없어서 내가 직접 사서 번역하면서 읽고 있다), 지금도 일본 노래와 일본 만화, 애니메이션을 휴대폰으로 안 보는 날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내세운 대의를 딱히 뭐라고 폄하하고 싶지도 않았다. 불매운동에 심정적으로 동조하더라도 일본에 친인척이 있어서 혹은 업무 관련으로 일본에 갈 수밖에 없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런 건 어느 정도 감안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 올려 버린 것부터가 한국 대법원에서 징용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이 남아 있다는(정부 차원의 책임은 몰라도 개인의 청구권은 여전히 유효하다) 판결에 대한 '보복'이었다는 점은 일본이라는 나라가 과거사 청산은 고사하고 그걸 직시할 의지라는 게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기 충분한 것이었고, "한국 같은 상식을 벗어난 나라에 가면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라는 어느 일본 국회의원의 발언은 간토 대지진 때의 조선인 학살 선동을 떠올리게 해서 상당히 불쾌한 것이었다.
올해 삼일절 맞아서 일본 여행 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기사를 보면서 내가 든 생각은 굳이 일본을 가고 싶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건 내 스스로가 일본에 대한 반일 감정이 유달리 극단적이어서도 아니고, 일본에 자주 가는 관광객들이 친일 토왜라고 욕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반일이냐 친일이냐를 떠나서 저런데도 일본에 가고 싶나? 하는 생각이 전후로 자주 들던 와중이었기 때문이다.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30208500125
https://imnews.imbc.com/replay/2023/nwdesk/article/6451019_36199.html
일본 관광이라고 하면 이랏샤이마세, 친절한 서비스와 탄탄한 볼거리를 말하고 그에 비하면 한국은 볼 것도 없으면서 바가지만 씌운다고들 한다. 그런 일본에서도 저런 사건이 그것도 관광지에서 터졌다는 것은 일본 사람들로서도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그것도 일본이라는 나라를 대표하는 관광 상품들이 아니던가. 저런 걸 감수하면서도 굳이 일본에 가고 싶은가, 그렇게도 일본이 좋아 못 견디겠나 싶은 것이 내 의아함이었다. 하긴 초밥 먹으러, 라멘 먹으러, 온천 담그러만 일본에 가는 건 아니니 일반화는 할 수 없겠다. 하지만 방사능 문제 같은 것은 아무래도 아니었다. '먹어서 응원하자'라는 당시 외국 정상(이명박 당시 대통령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말 같지도 않은 이벤트를 벌이면서 후쿠시마 농산물은 안전하다고 홍보하려 했지만 그럼 어째서 일본 사람들은 후쿠시마 농산물이라고 하면 열에 한두 명밖에 사지 않고 그거 먹으면 죽을 것처럼 덜덜 떨었는지. 아무리 문제가 없다고, 먹어서 응원하자에 참여한 연예인들이 피폭되었다더라 하는 건 다 거짓이다, 라고 해도 사람이 먹고 안 죽는다고 아무 거나 먹을 수는 없는 거 아닌가? 그걸 어쨌든 과학적으로 먹어도 문제가 없으니까 우리는 먹겠다, 후쿠시마 쪽에만 안 가면 된다, 일본 관광 가는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자기 돈 내서 일본 관광을 가는 건가.
단순히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갖는 호불호 자체에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하면서 반일감정은 무조건적인 여론 선동에 의한 것이라고, 역사문제와 사생활은 별개라고 말하면서 일본으로 좋아라 여행 가는 사람들에게는 일본 관광지에서 벌어지는 한국인에 대한 반한, 혐한의 감정은 그저 한국이 일본에게 먼저 잘못했으니까 정도로 치부되는 모양이고, 일본에서도 후쿠시마산 농산물에서 사고 1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방사능 수치가 기존 농산물의 열 배가 넘게 검출이 되는데도 '나하고는 상관없다', '아몰랑' 정도로 치부되는 것인가 의아해진다. 나아가 일본 관광지에서 벌어지는 어찌 보면 한국 관광지에서의 문제점 이상으로 심각하고 꺼림칙하기 그지없는 사건들도 열렬히 일본 관광을 가겠다며, 역사문제와 사생활은 별개라며 스스로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에게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듯하다.
나는 불매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을 비웃고 조롱하면서 인터넷에서 나 친일이요 인증하겠다고 하는, 그리고 삼일절에 굳이 일본 관광을 가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을 굳이 더는 욕하지 않기로 했다.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30225500016
https://www.sedaily.com/NewsView/29LWVO6NPN
"불매운동 끝났나 봐?" 하는 냉소적인 비아냥에 더해서 "한국인들은 일본에 와서 돈도 많이 안 쓰는데 와 봤자 일본에는 별 도움도 안 되고 한국 기업 배만 불린다"는 일본 언론의 한국인들의 일본 관광 증가 현상에 대한 분석이 있었다. 나는 일본인들 특유의 이중적인 의사 표현이 녹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도 많이 안 쓰는데 와 봤자 일본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그 말은 조롱의 대상을 불매운동에 자발적으로 동참했을 한국인뿐 아니라 그런 한국인들을 '반일감정에 선동된 사람'이라고 치부하며 스스로 깨어있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중립적이고 의식 있으며 정치적 문제에 구애되지 않는 자유인이라 자처하며 일본 관광을 나선 한국인들까지도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는 것이다. 일본 관광을 택하는 한국인들은 모두 거리가 가깝다는 점과 저렴하다는 점을 일본 관광을 택한 이유로 보았다.
내가 성격이 삐딱해서 그런 지는 몰라도 나는 손님한테 '그렇게 많이 돈 쓰지도 않으면서' 이런 소리를 공공연하게 하는 사람이 뭔가 손님에 대한 예의 내지 서비스 의식이라는 것을 갖추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 경험인데, 비교적 오래 편의점 알바를 했고, 점장님한테 누누이 들은 것 중에 하나가 "노숙자든 간첩이든 우리 매장에서 사탕 한 개, 껌 하나 팔아 주면 사람은 우리 손님이고 우리 고객이니 예의를 갖춰서 대해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요새는 하도 진상들이 많아서 손님도 가려 받는 매장이 많다고는 하지만, 한국인들 입장에서 '저렴하다'고 해도 일단 국외 여행인 이상 그 비용은 단순한 국내 여행과는 결을 달리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본인도 그만한 경비를 감당할 수고를 하고 가는 것일 게다. '가까우니까', '싸니까' 하면서 일본 관광 와서는 돈도 많이 쓰지 않고 가는(어느 나라 어느 지역이나 관광지 사람들에게는 백인이든 흑인이든 황인이든 당연히 돈 많이 쓰는 사람이 천황 폐하 아니겠는가?) 한국인 관광객들을 '뿌리는 돈도 쥐뿔 없는 주제에 꼴에 관광객이랍시고 거들먹거리기는ㅋㅋ' 이렇게 비하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차피 (한국 관광객들이 일본에서 쓰는 돈 얼마 안 되니까) 불매운동이랍시고 일본 관광 안 간다고 해 봐야 다른 돈 많이 쓰는 나라 관광객들 유치하면 그만이니 마음대로 해 보라는 조롱 같기도 하다.
그런 '자발적인' 한국의 일본 관광객들에 대한 조롱을 통해서 그런 '생각 없는' 인간들을 욕할 한국인들에게 동조하면서 그들의 기분을 맞춰 주는 식으로 불매운동에 동참했던 한국인들을 띄워 주려고 한 것일까 싶기도 한데, 일본인들의 성격상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리고 저런 일본의 반응 속에 담긴 '조롱'을 깊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아몰랑 식으로 자기와는 상관없다고 한 귀로 듣고 흘려 버리는 사람들이 일본행 비행기, 일본행 여객선에 오르는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이 아닐까. "역사 문제와 사생활은 상관없다"는 대답을 기자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면서 말이지.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호오, 딱히 지들 가고 싶다는 거 뜯어말려야 할 것만은 아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는 반일감정 따위 구애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그 증좌로서 일본 관광을 선택했지만, 정작 일본에서는 '돈도 많이 안 쓰는 와도 그만 안 와도 그만' 취급밖에 받지 못하거나 말거나 "저쪽이 좋아하건 좋아하지 않건 무슨 상관이냐. 내가 좋아서 가는 건데"라고 구태여 정신승리를 하는 사람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상대가 자기를 싫어하든 무시하든 비웃든 내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그만이고 내가 가고 싶어서 가는 거니 상관없다는 건 원효대사 해골물 정도의 자기기만이다.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과 일방적인 화이트리스트 한국 등재에 대한 항의로 일본 불매를 선택한 사람들을 조롱하면서 자발적으로 일본 관광 가서 지 돈은 쓸 거 써 놓고 "얼마 쓰지도 않네ㅋㅋ" 소리나 듣는 것은 조롱이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상대가 조롱해도 내가 조롱이라고 받아 들이지 않으면 조롱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MZ의 사고 방식일까? 자기가 조롱이라고 생각하든 생각하지 않든 조롱은 조롱인데 말이다. 일본 관광 가서 쓴 돈도 쓴 당사자에게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닐 것이고, 일본 관광지에서 벌어지는 일들뿐 아니라 후쿠시마 방사능 문제는 반일감정이나 역사문제, 정치적 문제와는 아무 상관 없는 명백한 생존의 문제이고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는 존망의 문제건만.
여담이지만 일본어에서 '자유(自由)'라는 말은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는 것'(自分の意のままに振る舞うことができること)인 동시에 갓테키마마(勝手気儘) 즉 '남이야 뭐라고 하든 말든 (절제도 뭣도 없이) 제멋대로 구는'(他人のことは気にせず、自分のしたいように行動すること) 것을 의미하며 '방일', '방종'과 유사어로서 굉장히 부정적인 표현으로 쓰이기도 한다. 일본 관광을 떠나는 한국인들은 아마 나보다 더 일본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공간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라가미(荒神, 2003) (2) | 2023.03.20 |
---|---|
임건순 씨 당신은 읽지 마세요 나는 읽을 테니까 (0) | 2023.03.03 |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많다"는 위선 (0) | 2023.02.27 |
예수쟁이와 배우와 기자들과(feat.나무위키 꺼라) (1) | 2023.02.26 |
불교는 원령이나 귀신의 앙화를 말하지 않는다(feat.1:29:300의 법칙) (1) | 2023.0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