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시작함에 있어서 분명히 말해 두자면 나는 천황이나 일왕(일본 왕) 둘 중 어느 하나만이 옳고 나머지는 틀린 것이라고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황희 정승처럼 네 말도 옳고 네 말도 옳다는 식으로 가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염두에 두는 것은 천황이라는 호칭이 무조건적으로 일본에 대한 굴종이 아니듯이, 일왕이라는 칭호 역시 일각의 주장처럼 반일 감정에 선동된 자들의 자격지심, 열등감의 발로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일본의 군주를 천황이라고 부르는 것에 불쾌함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다. 나무위키를 봐도 부득부득 천황이라는 칭호를 한국에서만 굳이 왕이라고 부르는 것은 한국인들의 편협한 반일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면서 온갖 신문의 칼럼들을 긁어 가지고 와서 박박 우기는 인간들의 글은 읽다 보면 코웃음이 나오는 것을 넘어서 그냥 멍해진다.
나 자신은 일본 천황이나 일본 왕이나 어느 쪽도 그렇게 비하나 폄하의 의미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학술적인 용어에서만큼은 아무래도 천황이라는 용어를 제대로 사용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는데, 헤이케 이야기의 한국어 번역본을 읽고 난 뒤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물론 학술적인 용어나 국가간의 외교 의전이 아니라 언론에서는 '일본 국왕'이라고 부르는 게 적절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무위키에 써 놓은 것을 좀 짚어보자 싶어서 가지고 왔다.
나무위키에는 기초적인 논리적 오류조차도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신문 기사라고 많이 가져 오기는 왔는데 정작 읽어 보면 나는 그걸 퍼온 사람들이 그 기사에 나온 내용을 한번이라도 읽어 보기는 했는지 모르겠다. '일왕'이 격하의 표현이 아니라는 '극단적인 반일론자' 전우용의 주장에 대해 "이는 역설적으로 한국사람들이 '일왕' 표기를 격하 표현이라고 인식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만일 '일왕은 천황의 다른 표기일 뿐'이라는 중립적이고, 비하 의도 없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면 애초에 이런 식으로 반론할 이유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해놓은 것을 보고 코웃음이 나왔다. 이 말은 '천황'이라는 호칭도 "쟤들이 뭐라고 부르든 우리는 선진국이고 민주 공화국의 시민인데 무슨 상관이냐. 그냥 쟤들이 부르는 표현을 존중하자"라는 표현상의 이유가 아니라는 걸 굳이 그렇게 설명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론을 사기 충분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걸 논리라고 주장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한국에서의 일본국왕
일단 한국에서 일본의 천황을 가리켜 부르는 '일본국왕'이라는 칭호가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八年, 夏四月, 日夲國王遣使, 進黄金三百兩·明珠一十箇.
8년(882) 여름 4월에 일본국왕이 사신을 보내 황금 300냥과 명주 10개를 바쳤다.
삼국사기 권제11 신라본기제11 헌강왕 8년
大曆十四年己未, 受命聘日夲國, 其國王知其賢, 欲勒留之. 㑹大唐使臣髙䳽林來, 相見甚懽, 倭人認巖爲大國所知, 故不敢留乃還.
대력(大曆) 14년 기미(779, 혜공왕 15년)에 명을 받아 일본국을 방문하였는데, 그 왕이 그의 현명함을 알고 그를 억지로 잡아 두려 하였다. 마침 당의 사신 고학림(高鶴林)이 와서 둘이 서로 만나 매우 기뻐하자, 왜인들은 김암이 대국(大國)에도 알려져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 때문에 감히 잡아 두지 못하였고 이에 돌아왔다.
삼국사기 권제43 열전제3 김유신 하(下) 부 김암
일본이 중국 제도를 모방하면서 자국의 국호를 공식적으로 왜에서 일본으로 바꾸고, 칭호도 오키미(大王)가 아니라 덴노(天皇)으로 바꾸어 부르기 시작한 뒤에도 일본 안에서 천황이라는 칭호 외에 미카도(帝/御門), 다이리(內裏), 오키미(大君), 슈죠(主上), 텐치 사마(天子樣) 등의 칭호들이 혼용되어 쓰였고, 신라에서도 7세기 이후 일본의 지배자를 '왕'이라고 지칭해 부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도 후대의 조선처럼 위사(僞使)라 해서 일본 각지의 호족(다이묘)들이 스스로 '일본 왕'의 사신이라고 칭하면서 조공을 바치고 그에 대한 급부로 따라올 사여를 노린 일종의 사칭이라고 해석할 수 있어서 확실하지는 않다. 분명한 것은 한국사에서 '일본 국왕'이라는 칭호가 등장하는(혹은 '일본'의 군주를 '왕'이라고 부르는) 시점을 삼국사기의 편찬 시점 나아가 신라 헌강왕대까지, 나아가 신라 혜공왕대까지도 소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삼국유사 권제2 기이제2 원성대왕조에는 당 정원(貞元) 2년 병인 즉 786년 10월 11일에 '일본왕 문경(日本王文慶)'이라는 인물이 등장하여 신라에 사신을 보내 원성왕에게 신라의 보물 만파식적을 요구하였다고 되어 있다. 일연은 여기서 '일본왕 문경'이라는 인물이 일본에 실제로 존재했던 군주인가 아닌가, 실존했다면 어떤 군주를 가리키는 것인가를 살피고자 일본제기(日本帝紀)라는 문헌을 끌어다 대조하며 고증을 시도했다. 현재는 전하지 않는 이 책에서는 일본의 55대 왕이 '문덕왕(文徳王)'이라고 전하고 있었고, 실제로 일본서기를 비롯한 육국사에서 55대에 해당하는 천황은 몬토쿠 덴노(文徳天皇, 재위 850.5.31~858.10.7)로 일본제기라는 문헌과 대수가 들어맞는다. 신라측 기록에 등장하는 '일본왕 문경'과 그나마 연대상으로 가까운 인물이었지만 문경이라는 이름 자체는 일본제기에서도 살필 수 없었기 때문에 일연은 '일본왕 문경'이라는 인물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신라에 만파식적을 넘겨줄 것을 요구했던 이 일본왕 문경이라는 존재 역시도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일본의 어느 호족이 스스로 일본 왕을 사칭한 위사를 보낸 것일 가능성도 염두에 둘 수 있겠지만, 이것도 확실하지 않다.
재미있게도 삼국유사의 해당 원문에서도 몬토쿠 덴노를 가리켜 문덕'왕'이라고 쓰고 있는데, 책의 제목을 일본'제'기라고 한 이상 일연이 참고했을 원본 일본제기에서는(이 책이 신라 시대의 저술인지 고려 시대의 저술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분명하게 '덴노(天皇)'라고 표기되어 있었고 이를 일연이 인용하면서 '왕'으로 고쳐 표기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 이유는 삼국유사가 집필되던 당시 고려가 몽골 제국 원의 부마국으로 반복속되어 기존의 외왕내제로 운영되던 독자적인 황제국 지위 역시 모두 격하되어 있던 상태였던 점을 감안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당시 중국 대륙에서 '황제'를 칭했던 송(남송)이나 금은 모두 원에 멸망당한 상태였고, 고려는 40여 년의 전쟁 끝에 고려의 왕조와 영토, 백성에 대한 통치는 그대로 유지한다는 '불개토풍'을 조건으로 원과 화친했지만, 고려의 왕이 자진해서 쿠빌라이 칸의 부마가 되기를 자처해 고려 왕실에 몽골의 공주가 시집오면서 이후 고려 왕실을 비롯한 사회 전반에 몽골 문화가 침투했고, 몽골에 반복속된 신세로 행정 기구마저 원의 제후국으로 강등, 통폐합되는 수모를 겪지 않으면 안 되었다. 두 차례에 걸치는 몽골의 일본 원정(1274년, 1281년)도 이 무렵에 벌어졌던 일이다.
쇼토쿠 태자가 처음 수 양제에게 사신을 보내면서 "해 뜨는 땅의 천자가 해 지는 땅의 천자에게 글을 보낸다"라고 말한 그 유명한 문장은 쇼토쿠 태자 당대는 물론 후대의 고려나 중국 송 왕조 모두 알고 있었으며, 당대 고려나 송은 모두 이러한 일본의 태도에 대해서 "내버려 두고 상대하지 말자"라는 이른바 '치지도외'의 자세로 일관했던 것 같다. 한마디로 병먹금. 자기들 나라에서나 천황이라고 부르든 말든 알 게 뭐냐, 그 대신 인정은 못 해 준다, 라는 자세였는데, 현대 한국에서는 이때 고려/조선이나 송의 반응을 들어 그때처럼 천황이라는 칭호를 대하면 되는데 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거냐며 천황 칭호를 주장하는 이들의 주요 논거가 되고 있다.
송사 일본열전은 일본측으로부터 얻었거나 혹은 일본측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통해 작성한 것이 분명한 '연대기'라는 문헌을 인용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은 현재는 전하지 않지만 이 연대기를 인용한 송사의 찬자는 일본의 전설적인 초대 덴노 진무에서 시작되는 이르는 일본 역대 덴노의 이름을 연대 순으로 모두 명기하였다. 마지막 덴노가 모리히라 덴노(守平天皇)인데 이 모리히라는 64대 엔유 덴노(圓融天皇)이다. 송사가 인용한 연대기에서 엔유 덴노의 직전인 레이제이 덴노를 두고 "지금은 타이조덴노(太上天皇)가 되었다"고 했고, 레이제이 덴노가 양위하여 엔유 덴노가 즉위한 것이 969년 11월 5일이고 레이제이 덴노가 사망한 것이 1011년 11월 21일이므로, 송사가 인용한 이 연대기 역시 이 사이에 작성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송사에서는 이 역대 일본 덴노들을 모리히라 덴노까지 죽 늘어 놓은 다음
次守平天皇, 即今王也. 凡六十四世.
다음이 모리히라 덴노로 즉 지금의 왕이다. 무릇 64세이다.
라고 써 놓았다. 송사가 일본의 군주를 '덴노'라고 제대로 표기하면서도 마지막에 와서는 '지금의 왕'이라고 표기한 것은 어쩐지 부자연스러운 감이 있다. '지금의 왕이다'이라고 하는 저 말을 연대기를 작성한 사람이 쓴 것인지 아니면 송사 일본전의 편찬 시점에서 고쳐 쓴 것인지 확실하지 않은데, 송사의 찬자가 일연이나 다른 중국인 찬자처럼 덴노의 칭호를 거슬려 해서 고쳐 쓴 것이라면 이제까지 다른 일본의 역대 군주들은 모두 '덴노'라고 잘 써 놓고 마지막에 가서 '지금의 왕이다.'라고 쓰는 것은 아무래도 뜬금없는 일이니 송사의 찬자가 저렇게 쓴 것은 아닐 듯싶다. 송사가 인용했던 연대기의 저자가 중국인인지 일본인인지도 확실하지 않은데, 중국인이라면 중국에서 일본의 '천황'이라는 칭호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말해 주는 사례일 것이고, 일본인이라면 일본에서도 천황을 가리켜 왕이라고 부르는 것에 그렇게 거부감을 가지지는 않았다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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