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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일기

'너는 운 좋은 줄 알아라'라는 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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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50플러스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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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아이는 반드시 낳아야 한다는 50+세대들의 생각은 대체로 이렇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기쁨과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출산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낳아놓으면 알아서 큰다(자기 먹을 것은 타고난다)/ 부부간의 끈끈한 유대감이 생긴다/ 노후에 든든한 배경이 되고 외롭지 않다/ 아이가 없으면 완성된 가정이라고 보기 어렵다/ 자식 때문에라도 이혼하기 힘들어져 가정이 끝까지 유지된다/ 사회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구성원으로서 의무이며 책임을 지는 일이다.

 

나보다는 네 인생에 더 중요한 문제이니 네 생각과 판단을 존중하겠어요즘같이 부모도 자식도 부양의 의무에서 벗어나 각자 생존해야 하는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는 부모가 낳아라 말아라’ 강요할 순 없겠지하지만 현재의 생각이 최선이 아닐 수 있으니 성급한 결론은 내리지 말고 긴 시간을 두고 더 깊이 생각했으면 좋겠어피임으로 아이의 출생과 수를 조절할 수 있고 나의 편익이나 사회 변화의 추세의 영향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생명을 단지 그것으로 가볍게 결정할 일은 아닌 것 같아낳고 싶어도 못 낳는 불임부부들에겐 이루지 못할 꿈이란다. 그러니 어느 날 새 생명이 너희 부부에게 찾아온다면 무조건 감사하고 기쁘게 맞아주기를 바란다.

 

요새는 '나라 소멸'까지 운위될 나올 정도로 언론에서 저출산, 인구감소, 이런 소리를 떠들어댄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아직 미혼이고, 어찌어찌 벌어먹고는 살고 있다. 애초에 세상에 태어난 이후로 부모께 '효도'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으니, 고향집에 갈 때나 전화를 할 때 '니가 빨리 결혼을 해야 되는데'라는 소리를 들으면 "나는 결혼 안 하고 애 가질 생각도 없다"고 땅에 공 튀기면 튀어오르듯이 따박따박 대답하는 것은 이제 일상의 한 장면이 되었다. 먹고 살려고 참 별별 것 다 했고 별별 것 다 봤다. 그렇게 살다 보니 결혼을 안 하게 되었고, 나이를 먹으니 대하는 패턴과 스킬도 조금 늘어서 "때 되면 지가 알아서 나한테 오든지 하겠지"(물론 그럴 일 평생 없음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식으로 넘겨버리고 있다. 

 

저출산이네 인구감소네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그런가 하고 넘겨 버리기도 하고, 오늘 저녁에 뭐 먹나, 길 좀 얼었던데 들어갈 때 춥겠다, 이번 달 카드값 얼마 나왔더라, 이런 걸로 바로 관심이 쏠려서 잊어버린다. 정말 기분 나쁠 때 그런 보도를 보면서  꼴 좋다고 비웃을 때도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인구가 줄거나 말거나, 국가가 소멸하거나 말거나, 어떻게든 되겠지 식으로 넘겨버리고 있는 중이다. 그런 인구 감소, 저출산, 이런 보도 기사에 나와서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나라가 소멸 위험에 처했다느니, 어디 시에서는 셋째 낳으면 얼마를 주고 넷째 낳으면 얼마를 더 준다느니, 어디 동네에서는 몇십 년만에 애가 태어났다고 현수막을 걸었다느니, 어디 회사 대표님은 아이 낳은 직원 집에 찾아가서 애 앞에 큰절을 올렸다느니, 하는 기사를 뭔가 기분이 안 좋을 때 보면 솔직히 통쾌하기도 하고,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이 사실이다. 원래 몸에 안 좋을 수록 더욱 끊기 어렵다. 술이든 담배든. 

 

https://youtu.be/8kg6sK6Do1M

 

저출산이 문제다, 인구 감소가 문제다, 이러는 사람들에게 애를 낳아야 할 이유, 라는 것을 질문하면 대부분 돌아오는 대답들은 비슷하다. 아이를 키우는 기쁨, 보람, 만족도, 젊은 세대가 그런 걸 몰라서 자기들 희생하기 싫어서 애를 안 낳으려고 한다고, 그런 이유를 대던 사람들이 드디어 "이렇게 안 낳으면 나라 망한다"라며 저출산이 얼마나 문제인지를 사람들에게 포고하고 나온 것일게다. '국가 소멸'이나 '지방 소멸' 이런 말을 가져와서 애 안 낳으면 큰일 난다(그러니 애 낳아라) 이런 식으로 저출산이 얼마나 위험하고 위기인 것인지를 딴에는 알리려는 의도였겠지. 그들 딴에는. 

 

그런 식으로 아이를 낳아야 할 이유를 백 개, 천 개 뻔한 것들로 가져와서 들이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한물 간 막장 드라마 작가가 그저 그런 뻔한 치정 이야기만 곰국 우려내듯 되풀이하는 것 같아서, 작가지망생이었던(솔직히 이었던이라고 쓰기에는 아직도 포기를 못했지만) 기억이 떠올라 씁쓸하다. 그렇게 뻔한 이야기들을 가져와서 자기가 하려는 이야기만 계몽주의 시대 선전물처럼 지나치게 내세우려고 하면 그런 글은 결국 외면을 당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요즘 시대 사람들은 아무리 어떤 작품이 구성이 뛰어나고 주제가 좋아도 재미가 없으면 선뜻 보려고 하지 않는다. 영양가가 있어도 맛이 없으면 안 먹는 것처럼. 당근이나 멸치 싫어하는 애한테 조금이라도 당근, 멸치를 먹이고 싶다면 적어도 애가 눈치 못 채게 음식에 다지고 갈아서 표 안 나게 내놓는다든지 정도의 겉치레라도 보이지 않고 "멸치 안 먹으면 키 안 큰다" 식으로 무미건조한 팩트만 가져다 찍어누르려고 해 봐야, "반찬 투정할 거면 밥 먹지 마라", "아프리카나 북한에서는 이것도 없어서 못 먹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어디서 반찬 투정이냐"라고 원론적인 말만 되풀이하면서 억지로 먹이려고 들어봐야 애들은 불만만 품을 뿐이다. 이건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내가 그런 인간이었거든. 

 

식상한 소재, 뻔한 이야기, 이런 걸 하더라도 일단 누군가를 희화화하거나 폄하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다.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문제라면서 불임부부를 들고 나오는 경우는 뜬금없다. 아이를 낳아야 할 이유를 들겠다면서 죽 보람이니 기쁨이니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개념들을 가지고 오는 것까지 모자라 "불임부부들은 애 낳고 싶어도 못 낳는다"는 것을 가져온 모 기고를 보면서 살짝 거슬렸다. 딴에는 아이를 낳는 것이 낫다는 강조의 의미였던 것 같은데, 그러면서 가져온 불임부부 운운하는 표현이 도리어 불임부부의 사정이나 감정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말들로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이가 부부간의 끈끈한 유대감을 준다"는 말은 삼키기 따갑다. 세상에 부부라는 껍데기만 달고 있지 실상은 남보다 못한 사이로 사는 부부들이 넘치고 넘친다. 이미 사이가 틀어질 대로 틀어져서는 각방까지 쓰면서 자식한테 "너 아니었으면 진작 이혼했을 거다", "나는 너 때문에 살기도 싫은 상대와 결혼해서 산다" 식으로 자기들 부부끼리 해결해야 할 문제까지도 자식 탓으로 돌리는 부모들의 행동 또한 명백하게 아이에게 정서적인 학대이고 폭력이 된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부부간의 끈끈한 유대감을 준다"는 말 역시도 아이에게뿐 아니라 불임부부에게 참으로 잔인하기 짝이 없는 소리이다. '사이가 안 좋아서 이혼 직전인 부부를 그나마 잡아매 놓고 갈라질 가정을 가까스로 유지시키는' 족쇄로 아이들의 존재 이유를 정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임부부들을 '아이가 없어서 끈끈한 유대감이 없는 부부들'로 낙인을 찍는다.

 

"다 자기 먹을 것은 가지고 타고 난다"는 말은 애는 낳기만 하면 버려 두어도 알아서 잘 큰다는 이야기이고, 정작 애를 낳은 뒤의 일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무책임한 답변이다. 그런 말을 믿어서 방임주의로 애를 키우는 인간들이 있다. 먹이고 입히고 재우기만 하면 자기 마음대로 애를 다뤄도 된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이 있다. 보통은 그런 인간들이 애를 망친다. "세상에 태어나게 해 준 것만 해도 감사한 줄 알아라"라며 애를 학대하고, 마음대로 다룬다. 그리고 그런 인간들을 부모로 뒀거나 옆에서 보고 자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게 내 생각이다.

 

자기 먹을 것은 가지고 태어난다는 식으로 애는 낳기만 하면 알아서 큰다 그러면 애 낳은 뒤에 젖먹일 필요도 옷 입힐 필요도 없다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어차피 자기 먹을 것은 다 가지고 태어나는데? 사교육비가 많이 들어서 애를 못 키우겠다는 이야기에 그러면 사교육 시키지 마라, 경쟁할 필요없다, 공부 안 하고 대학 안 가도 잘 살 수 있다는 소리를 할 수는 없다. 진짜 자기 생각없이 하라는 대로 하고 시키는 대로 하는 지각 없는 노예나 육성할 것이 아니라면. 

 

그런 식으로 '낳아 놓기만 하면 끝'인 세상은 이미 근대의 시작과 함께 끝이 났다. 그리고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그렇게 애 낳은 뒤에 자기 먹을 것을 가지고 태어났음을 사회가 제대로 확인하게 해 주는 나라가 아니다. 괜히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운위되는 것이 아니다. 여기 너까지 먹을 것은 없다, 네가 가진 능력과 네 의지로 벌어 먹어라라는 소리나 막 태어난 애한테 안 하면 다행이지. "자식 때문에라도 이혼하기 힘들어져 가정이 끝까지 유지된다"느니 하는 말도 아이들에게 얼마나 잔인한가. 자식이 있어도 이혼하는 세상인데? 

 

하지만 아이를 낳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겠다면서 불임부부들 문제를 가져와 '낳고 싶어도 못 낳는 불임부부들에게는 이루지 못할 꿈'이라고 말하는 것은 "불임부부들에 비하면 너희는 꿈을 이뤘으니 행복한 줄 알아라" 라는 의미가 된다. 동시에 아이는 자기가 직접 낳은 아이여야만 의미가 있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끈끈한 유대감이 없는 부부가 되고,  졸지에 불행하다, 불쌍하다는 식으로 '불임' 부부들이 폄하될 수 있는 이런 글을 써서라도 애 낳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데 애를 안 낳겠다는 거냐 라는 식으로 말하니, 저 글을 쓴 사람은 사고방식 수준이 딱하기 짝이 없다.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언어가 있다. 결국 난다 긴다 해도 자기가 경험하고 느낀 것 이상을 사람은 생각할 수 없고, 구현할 수 없다. 저 너머 이상의 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저 너머 이상을 것을 보아야 한다, 그것을 볼 수 없다면 너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결국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특히 누구에 비하면, 어디에 비하면 너는 그나마 나은 줄 알라, 행복한 줄 알라, 이러면서 꼭 우리보다 사정이 불리하고 또 낙후된 사회나 국가를 가져와서 작금의 부조리한 상황과 현실에 대한 불만이나 이의제기를 하는 목소리를 찍어 누르는 인간들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꼬우면 북한 가라 이기야" 이러던 분들이 이런 식으로 '낳고 싶어도 못 낳는 불임부부도 있는데 너희들은 애 낳을 수 있는 몸이면서 왜 애를 안 낳겠다는 거냐'라는 글을 쓰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