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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일기

천박한 인간들과 그 세상에서(feat.박경리 선생님)

옛날에는 폭군을 '폭군'이라고 부르는 것이 위험한 일이었다. 
요즘은 노예를 '노예'라고 부르는 것도 위험한 일이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말하는 것이 미덥다' 하여 그 사람을 인정해 준다 하면
그것은 그 사람이 군자답다는 뜻인가,
겉모습이 그럴싸하다는 뜻인가?

-논어 선진편

 
천박하다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떤 한자를 쓰느냐에 따라서 두 가지 뜻이 나온다. 
보통 천박하다고 할 때는 2번의 뜻을 많이 쓴다. 
 
1. 뒤섞여서 고르지 못하거나 어수선하여 바르지 못하다. 
2. 학문이나 생각 따위가 얕거나, 말이나 행동 따위가 상스럽다. 
 
천박한 인간들은 다루기가 쉽다. 생각하는 게 뻔히 눈에 보인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 말고는 생각하지 않고 본능대로 사는 주제에 스스로를 가식적이거나 위선적이지 않고 솔직하다고 포장한다. 인간의 본성은 어차피 이기적이고 본능이 이성보다 앞설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이라고 하면서 깊게 생각할 줄을 모르고 욕망을 풀풀 드러내 놓고 살면서 그걸 솔직함으로 포장하고 사는 인간들은 옆에서 보면 코웃음이 나오는 것을 넘어서 짜증까지 일게 된다.
 
그런 인간들은 욕망만 잘 맞춰 오구오구만 잘 해 주면, 지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옆에서 살살 띄워만 주면 지가 호구처럼 이용을 당하든 노예처럼 부림을 당하든 그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도 평생 모르고 똑같은 짓을 되풀이하면서 살기 때문에 우려먹는 입장에서는 그것만큼 편리한 노예가 없다. 그러니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매장에서 안 받아 주고 쫓아내도 한국인들이 해외에서 문제가 있는 행동을 하니까 저 사람들도 안 받아 주는 거지 이러면서 자기들을 탓하고, "한국 애들 와도 어차피 뭐 싸구려만 찾아서 먹고 가고 돈도 별로 안 쓰더만" 하는 비웃음을 들어도 꾸역꾸역 일본에 잘만 간다. "경제적인 여행을 하는 건데 뭐가 문제냐"고.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30423500029

 

“한국인은 일본여행 와서 도시락, 햄버거 같은 싸구려 음식만 먹어”…日 우익의 궤변

극우 무로타니 “日보다 임금 많은 나라 젊은이들 맞아?” “호텔 대신 민박이나 캡슐호텔…사우나에서 자기도”, ‘혐한’(嫌韓) 선동으로 유명한 일본의 극우 인사가 이번에는 한국인의 자국

www.seoul.co.kr

 
https://www.khan.co.kr/world/japan/article/202303131515001

 

일본 매체 “한국 오마카세 열풍, 젊은이들 사치와 허세”

일본 주간지 슈칸신초의 인터넷판 데일리신초가 한국의 오마카세 열풍을 두고 ‘젊은이들의 사치와...

www.khan.co.kr

 
'삶은 소대가리'라는 원색적인 욕설은 듣기 싫고, '오마카세만 찾는 사치와 허세에 찌든 것들'이라는 에둘러 까는 비아냥은 모른 척해도 된다는 기준이 대체 뭔지 궁금하다. 그 욕을 누가 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이 나를 모욕할 의도가 있느냐 없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은 평소에 친구라고는 없는 나도 알겠구만 욕을 해도 대놓고 하지만 않으면 된다는 건가. 대놓고 하든 못 알아듣게 돌려서 하든 나를 무시하는 건 똑같은데? 나 같으면 "한국인 안 받으니까 딴데 가라"느니 "관광이랍시고 와서 돈도 별로 안 쓰더만" 이런 비아냥 들으면 기분 더러워서 안 간다. 일본 안 간들 일본 책 구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내가 내 돈 쓰고 바다까지 건너가서 왜 저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가 말이다. 저런 대접 받아도 좋다고 꾸역꾸역 가는 사람들은 참 충성스럽다고 해야 할지, 진짜 누구 말마따나 뇌가 삶은 소대가리마냥 절여진 건지.
 
저런 대접을 받아도 집에서 제사 지내는 것보다는 낫다고 하는 그 머릿속을 나는 정말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아, 물론 나도 제사는 많이 피곤한 일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족보는 어차피 조선 시대에 와서 다 조작된 것이고 우리는 따지고 보면 다 노비의 후손이 틀림없다고, 노비 주제에 무슨 집안을 따지고 제사를 따지냐며 열변을 토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는 아주 길게 자신이 알고 있는 사회학적, 인문학적 이야기들을 늘어 놓았다. 추석은 원래 서양으로 치면 추수감사절이고 추수감사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못 살았기 때문이며 그렇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복날을 챙기고 언제는 뭐 먹는 날 언제는 뭐 먹는 날 이렇게 따지게 된 것이라고 서양에서는 먹을 것이 부족했던 적이 없어서 그런 추수 감사를 챙길 필요가 없다고, 전근대에는 한국이 농경 사회였으니 추수감사가 중요한 의식이었지만 요새 농사 짓는 집이 몇 명이나 된다고 추수감사를 챙기느냐고 연설을 늘어놓았다.
 
내가 그 사람에게 뭐라고 해 줄 '가치'를 느끼지 못한 이유는 우선 먼발치에서 나와는 별개의 자리에서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지만, 그가 "죽어서 제사 챙길 필요가 뭐 있느냐. 생전에 잘해 드리면 그만이지"라고 말했을 때였다. 죽어서 생각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생전에 잘해 드리면 된다는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제사를 지내든 지내지 않든 사람은 결코 잘해 줬다고 할 수 없다. 농경 사회에서나 중요했던 추수감사 의식인 추석이 어차피 농사도 안 짓는 요즘에 뭐가 필요하냐는 그 말을 들으면서 미국은 농경 사회 아니지만 추수감사절에 온갖 파티 으리으리하게 하던데, 그러면 걔네들도 농경 사회 아니니까 추수감사절 챙기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라고 되묻고 싶었다. 그래서 그 얄팍하다 못해 같잖기 짝이 없는 인간의 머리에 물이라도 한 바가지 퍼부어 주고 싶었다.  
 
"우리는 따지고 보면 다 노비의 후손이 틀림없다. 노비 주제에 제사는 무슨 제사냐"고 열변을 토하던 그 사람한테는 미안하지만 한국사에서 노비는 그렇게까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조선 후기로 가면서 노비의 수가 늘어났다고 하는데, 그건 노비의 수가 늘어난 것이 아니라 노비라고 이름을 올린 사람들이 늘어난 것뿐이다. 하도 부역이 과중되니까 양민들이 대갓집에 노비로 있으면서 부역과 세금을 피하려고 했던 것이다. 흔히 알려져 있는 '족보 사기' 비슷한 일종의 위장전입이다. 조선의 노비들은 솔거노비 외거노비 이렇게 해서 바깥에 거주하면서 개인 사유재산도 보유할 수 있기도 했고, 또 양반 아니라고 해서 제사 안 지내는 것도 아니었다. 경국대전에는 양반은 3대 조상까지 제사하고, 중인은 2대 조상까지, 그리고 일반 평민은 1대 조상 즉 자기 부모까지만 제사를 지냈다. 제사라고 해서 뭐 얼굴도 본 적 없는 몇 대 조 조상까지 제사지내는 것이 아니라 딱 내 부모님까지만 제사지내면 되었다는 소리다.
 
https://cukoa.com/entry/%ED%86%A0%EC%A7%80-%EB%B0%95%EA%B2%BD%EB%A6%AC

 

토지 - 박경리

박경리의 토지 1. 박경리의 토지를 읽고 박경리의 토지에는 사실 기억하기에도 어려운 많은 등장인물이 있으며 그 등장 인물 사이에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정말 방대한 이야기이다. 토지를 읽

cukoa.com

 
박경리 선생님이 토지를 집필하시게 된 배경에 대한 설명(신동아 인터뷰더라)을 내가 고등학교 때 참고서에서 지문으로 읽었었는데, 그때 처음 읽었던 이 말이 유독 기억에 남아 있어 다시 찾아 보았다. 조선의 농민들은 부모 기일에 물 한 그릇 안 떠 놓는 것을 진짜 창피스러운 일로 생각했다고 박경리 선생님은 그러셨다. 조선의 농민들은 바깥에서 사람이 찾아오면 옷을 갈아입고 만났고, 제사 지내는 날에는 제대로 정장을 입었고, "우리 농민들은 다른 나라와는 뭔가 확실하게 다른 미의식이 존재했다"는 것이 박경리 선생님의 말인데, 박경리 선생은 그것이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사농공상 즉 사회적 계급으로 사(士) 바로 아래에 농(農)을 두었던 유교적 통치 구조와 관련이 있다고 하셨다. 물론 그것이 나중에 가면 너무 형식에 치우치게 되기는 하지만, 조선 사회에서 농민들에게까지 제사, 조상 숭배, 의식 구조 등이 흘러들어가고, 그것이 조선의 농민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각하게 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고. 농노의 숫자가 재산 보유의 척도였던 러시아나 중세 유럽의 농노처럼 서양에서 농민이란 조선과는 달리 '노예'에 가까운 신분이었다고.  
 
나는 제사를 부정한 것으로 보는 지금의 세상이 조선 시대만큼의, 박경리 선생님이 토지를 통해 이야기하시고자 했던 조선 농민들 속의 미의식을 구성하고 있었던 전근대 유교 문화만큼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명절에는 제사 안 지내고 해외여행 나가는 사람들이 요즘은 많다는데, 그런 사람들을 두고 "명절에 조상 복 받은 사람들은 진작에 해외여행 가고 조상 복 못 받은 사람들이나 제사 지낸다"라는 자조의 말은 그런 식으로 해외여행과 제사를 딱 나누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거기에 '빈부'라는 사회적 상징을 갖다 붙인다. 명절에 해외여행 가는 사람들은 명절에 제사 지내는 사람들과 대비되는 위치에 세워져서 전자는 이상적이고 개명한 상징처럼 떠받들어지는데, 후자는 비이성적이다 못해서 벗어버리고 탈피해야 할 비정상적인 것으로 격하된다. 마치 '문명'과 '미개'를 나누던 19세기 서양 선교사들이 동양인들을 대하던 것처럼.
 
"명절에 조상 복 받은 사람들은 진작 해외여행 나가고 조상 복 못 받은 사람들이나 제사 지낸다"는 말은 꼭 금전적인 여건이나 경제적인 여력 외의 다른 이유로 해외여행을 안 나가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졸지에 '조상 복 못 받은 사람'으로 낙인을 찍어 버린다. 그런 말에 동조하는 사람들한테는 명절에 굳이 휴학하고 알바하는 대학생들이나 가뜩이나 무료 인강이 사라져서 11월에 있을 수능 어떡하나 걱정하면서 준비하는 수험생, 최저시급 때문에 알바를 구할까 말까 고민하는 자영업자들, 사고로 병실에 누워서 창밖 아니면 천장만 쳐다봐야 하는 환자들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애초에 그들은 그런 걸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런 걸 생각하는 것은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 될 테니까. 
 
지가 번 돈으로 뭘 하든 니가 무슨 참견이냐, 지 돈 주고 해외여행 가는 게 뭐 잘못이냐 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제사 지내는 것만큼이나 해외여행도 결국 따지고 보면 허례허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해외여행 가는 것이 제사 지내는 것보다 대체 남는 것이 뭐가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좋은 경치 보면서 힐링을 하려고 한다지만 힐링이 꼭 좋은 경치 보고 관광지 가서 돈 쓰고 사진 찍어서 SNS 올려서 자랑하고 그래서 자기 기분 좋으면 그게 다인 게 해외여행인가? 그래서 일본에서는 싸구려밖에 안 되는 캡슐호텔이나 사우나 같은 데에 묵으면서 편의점 도시락 아니면 맥도날드 같은 걸 일본 갔다온 인증샷이랍시고 찍어 올리면서 나 일본 갔다 왔지롱 이러고 자랑하는 건가? 어쨌든 일본 간 거고 외국 간 거니까 됐잖아 이런 말 하고 싶은 건가? 제사는 적어도 못 먹고 버리는 음식 빼면 내 뱃속에 들어가는 거나 있지, 그리고 그때 아니면 안 먹을 음식들 구경이나 한다는 거나 있지. 일본이나 미국 같은 데까지 가서 편의점 도시락 먹고 캡슐 호텔 묵으면서 나 일본 갔다 왔지롱 이러고 사진 찍어서 SNS에 올리려고 그 돈 주고 해외여행 갔다는 건가? 
 
아니면 해외여행 갈 정도로 자기가 돈이 썩어난다고 잘 산다고 자랑하고 싶은 것인가 싶기도 하다. 그런 거라면 요즘 서민들이 먹고 살기 너무 힘들다느니 물가가 너무 올라서 걱정이라느니 하는 신문의 보도나 인터뷰는 너무 가증스럽다. 키케로인가 세네카인가 로마의 철학자가 "인간은 시간이 없다고 투덜대면서도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산다"고 꼬집었다는데, 해외여행 갈 정도의 계층이 서민이라고 할 수 있는 계층인가 싶은 의문도 의문이지만, 그렇게 해외여행 가고 할 정도면 경제적으로 결코 힘들다고는 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고 또 그런 사람들을 두둔하는 이 나라, 이 사회 인간들이 별로 걱정되지도 않고 가엾지도 않다. 
 
제사가 허례허식이라고 할 것 같으면 교회에 주말마다 나가서 갖다 바치는 십일조도 마찬가지로 허례허식일 뿐이다. 있는지 없는지 확실하지도 않은 신에게 돈을 바치는 것이나 정말 조상이 드시는지 눈으로 볼 수 없는 제삿상 차리는 것이나 다를 것이 전혀 없다. 주말마다 나가서 정말로 신에게 가는 것도 아닌 생돈을 그냥 버리고 오는 거나 다름없다. 그 돈을 1년 모으면 제삿상 한번 차리는 돈보다 모자라지는 않을 것 같은데 차라리 그 돈으로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효율적이지 않은가? 사교 모임에 가는 거니까 모임 참가비 정도로 생각한다면 예수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이라고 일갈하면서 예루살렘 성전의 장사꾼들을 채찍으로 내쫓아 버렸는데, 예수 찾고 기도하려고 교회 나가는 게 아니라 인맥 쌓으려고 교회 나가고 하는 거면 양심적으로 예수는 팔지 말아야지. 주님의 것은 주님에게 바치고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바치라고 했지만 십일조로 갖다바치는 그 돈도 결과적으로는 한 푼도 신에게 가는 것이 없단 말이다. 제사 음식을 조상의 혼이 받아 먹지는 않듯이. 
 
이쯤 되면 어느 쪽이 허례허식이고 쓸모없는 보여주기식 소비인지 의문이 들 뿐이다. 제사 지내는 집은 마치 전근대의 미명에서 깨어나지 못한 허례허식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고 자신들은 그들과 대조되는 '깬 사람'이고 '복 받은 사람'이라고 구별지어 생각하는 그 사고방식이 싫다. 나는 그런 사람들도 결국 똑같이 "나는 저런 것들과 달라"라며 자기 만족에 빠져 사는 인간들이라고밖에는 결론지을 수 없다. 그들의 '인간적인 존엄성'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