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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일기

어떤 '경제 유튜버'를 보고(feat.꺼무위키)

내 아무리 스스로가 불변하다 말하여도 
이 세상이 끝내 변해버린 것이라면 
나 역시도 그저 변한 것과 다를 바 없지 않겠는가?
-서아지, 네이버 웹툰 칼부림 중에서

 
 성철 비구는 생전에 "내 말에 속지 마라."라고 하셨다. 개신교 신자들이 두고 두고 떡밥으로 울궈 먹는 이 말은 사실 불교의 화법, 선문답의 그 수많은 은유와 역설들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이상할 것도 없는, 오히려 한 시대를 풍미했다는 평을 받는 고승이자 한국 불교계 최고 지위라는 종정에 앉은 분의 겸허함을 드러낸 표현이었을 뿐이다. 그 시대에는 맞았을지 몰라도 지금의 시대에 와서 맞지 않는 말이나 가치관은 셀 수도 없다. 자신의 방법이 옳다고 하면서 자신의 말이 맞다고 우기고 그것을 타인에게 강요하고 납득시키려 드는 사람들 또한 셀 수도 없다. 자신이 맞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틀렸다는 사람들도 셀 수도 없다. 석가모니 부처는 제행무상 즉 세상에 항구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것만이 항구적인 것이라고 했지만, 그런 사람들이 득시글거리는 시대는 항구적으로 죽 이어져 내려왔다. 
 
 요새는 아무나 유튜버를 하고 그 아무나 다하는 유튜버가 책을 낸다. 대놓고 그 분야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주제에 "돈 벌려고 책 썼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내가 봤다. 스스로 경제 유튜버라 칭하고 있지만 유튜브 활동 이전에 경제 관련 전공 및 경력은 없으며, 본인 스스로도 부자도 아니고 경제 전문가도 아니라고 강조하는 사람이 경제에 대해, 자본주의에 대해 논하는 책을 썼다(자유민주주의가 이래서 좋은 거겠지). 차가운 자본주의라면서 거창한 제목으로 책을 냈지만 책에 대한 평가는 참혹하다. 내용도 별 볼일 없고 담긴 내용이라는 것도 얄팍하기 짝이 없는데, 비싸기만 비싸다. 
 
 학력이 낮더라도 상업적 수완이나 투자의 본능을 발휘하여 큰 돈을 버는 사람들은 지역과 시대를 막론하고 어디에나 존재했고, 때로는 그런 사람들이 기존의 고인물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오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때문에 중졸 수준의 학력에 관련 전공자는 고사하고 그 분야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조차도 없는 사람이 그 분야에 대해 논하는 책을 쓰겠다고 나서는 것에 대해서 뭐라고 하고 싶지 않다.
 
 생각해 보면 나도 내 잘난 맛에 살면서 내 말이 맞다며 내 주위 사람들을 한참 아래로 낮춰 보고 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시대를 살아와서 그런지 그의 말이나 사고방식이 웃음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얄팍해 보이는 것은 (그 유튜버 본인이 박근혜 탄핵을 부당한 것이라고 보는 본인의 소신을 누가 뭐래도 어쩔 수 없고 바꿀 생각도 없다고 말하듯이) 어쩔 수 없었다. 아마도 내가 한참 내 주위 사람들을 낮잡아 보면서 내가 다 맞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살던 그때 내 주변 사람들도 나를 지금의 내가 저 유튜버를 보는 것처럼 똑같이 봤을 것이 틀림없다. 
 
 원래부터 나무위키 같은 것은 그다지 크게 신뢰하지도 않았고, 곱게 보이지도 않았지만, 요새는 나무위키 안에서 정말 그런 문제의 인물들에 대한 서술 관리를 누가 나서서 하는가, 그래서 뭔가 문제 서술이 보이면 즉각 달려가서 삭제하고 이러는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나는 세상 천하에 그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서술을 삭제하는 이유가 '인터넷 인기글이 제시되지 않은 비판성 서술이 없어서', 그러니까 인터넷에 누가 올린 글이 있고 그 글이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받은 내용이어야 된다는 그 내용에 한참 웃었다.
 
옳고 그르고의 가치판단보다도 그 글이 '인터넷에 사람들 인기가 있는 글'이 인용 근거로 제시가 되지 않아서라니.
꺼무위키가 괜히 꺼무위키가 아니다 싶다.
 
 저런 게 사람들 사이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것부터가 대중이라는 게 얼마나 믿을 게 못 되는 것인지 보여주는 반증이 아닐까. 그래서 그 삭제된 내용들을 여기에 그러모아서 가져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내가 보충할 내용이 보이면 보충할 내용도 덧붙이게 되었다. 
 

본말전도의 허술함 - 신뢰는 투명성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우선 "신뢰는 투명성에서 나온다"고 하더라. 맞는 말이다. 본인이 그에 맞지 않아서, 그리고 신뢰가 투명성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서 문제지. 이 말은 투명성으로 얻은 신뢰가 다른 요인으로 인해 소실될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 부분에 있어서 나는 저 유튜버에게 윤태호 작가님의 웹툰 '미생'을 권해 드리고 싶다. 미생에서 제일 와닿았던 대사 가운데 이런 게 있었거든. 솔직한 것이 진실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착각. 변명이나 핑계를 대서 사람들은 얼마든지 솔직해질 수 있다. 진실과 별개로. 내가 이 말을 여기서 왜 꺼내느냐 하면 그 투명성도 전적으로 신뢰를 담보하고 신뢰를 만들어내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무언가를 신뢰하는 기준에 투명성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백 번 양보해서 투명성이 신뢰를 만들어낸다고 해서 신뢰가 투명성에서 나온다고 단언해서는 곤란하다는 거다. 
 
 나무위키는 인터넷에 올린 사람들 인기를 많이 끈 글이 등재 기준이 되는 곳이지만, 인기를 많이 끌었다고 해서 그 글이 옳다는 근거는 없다(내가 여론조사 결과를 가지고 와서 하는 주장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다). 사람의 말이 앞뒤가 안 맞으면(혹은 그렇게 보이면) 그 말은 신뢰받지 못한다. 저 유튜버 본인은 자기 입으로 "시장경제는 도덕을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는데, 신뢰가 도덕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나? 본인이 그토록 '신뢰'를 강조하지만 정작 본인이 쓴 책부터가 경제학이 뭔지 하나도 모르고 그냥 관심받으려고 쓴 책이라는 내용면의 부실함과 얄팍한 지식, 나아가 책 자체의 내용을 떠나서 본인이 보인 경제, 사회, 역사 방면의 왜곡되었거나 잘못된 팩트를 주장하는 것을 지적하는 부정적인 평이 더 많은 판인데, 그런 상황에서 내용면에 대한 문제점은 제쳐두고 나 돈 벌려고 책 썼는데 어쩌라고 식으로 나오는 태도로 신뢰를 쌓기는 어렵다. 투명한 것만이 신뢰를 낳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앞에서 말했지만 학력이 낮더라도 상업적 수완이나 투자의 본능을 발휘하여 큰 돈을 버는 사람들은 지역과 시대를 막론하고 어디에나 존재했고, 때로는 그런 사람들이 기존의 고인물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오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문제는 그 사람이 경제 분야를 다루겠다고 나선 유튜버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현실경제에 참여하는 민간경제주체의 삶의 지혜와는 별개로, 사회과학으로서 경제현상에 대한 분석과 이론의 정립은 전문성을 가진 학자들의 영역이며, 그렇기 때문에 학부 수준의 경제학 지식을 테스트하는 것이다. 워렌 버핏이나 레이 달리오와 같은 전설적인 투자자들도 자신의 투자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미래를 예측할지언정, 경제학자나 경제학의 전문성을 갖춘 정책결정자의 영역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경제현상에 대한 이론적 분석이 주 컨텐츠임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사는커녕 일반 4년제 대학 학사학위도 없다는 것은, 그의 주장의 신뢰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중대한 결격사유임에 틀림없다.
 
 그는 자신의 유튜브로 "신자유주의란 원래 쓰지 않는 단어이며 자유주의에 적대적인 집단이 자유주의를 까기 위해 만든 단어'라고 주장했지만, 신자유주의라는 단어가 자유지상주의적 이념을 공격하는 데에만 쓰였던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와 대공황 이후의 수정자본주의, 그리고 오일쇼크 이후의 신자유주의를 시대적으로 구분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어이고, 애초부터 자유주의를 공격하기 위해 만든 단어는 전혀 아니다.
 
 그 유튜버는 선별적 복지를 주장하고 보편적 복지를 부정하는데, 선별적 복지라는 게 효율적일지는 몰라도 어느 나라든 '조세저항'에 시달린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의 가장 기본적 개념은 '모든 경제주체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용을 얻고자 한다.'라는 내용인데, 이는 당연히 세금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처칠이 베버리지 보고서라는 현대 복지제도의 근간으로 평가되는 보고서를 작성하게 한 것도 반공주의자로서 빈민층의 증가가 사회주의의 득세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복지를 통해 빈민층의 폭동, 비행을 막고 사회주의 세력의 득세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러한 대승적 차원의 목적이 당장 피 같은 세금을 내는 일반 국민(주로 조세의 핵심을 이루는 상류층, 중산층)에게 어떠한 효용감을 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표면적으로는 일단 찾아보기 어렵다.
 
 당장 현대 한국에서도 (그 유튜버 본인도 말했지만) 기초적 사회보장제도인 4대 보험조차 돈 아깝다는 철부지 소리를 하면서 비난하는 사람이 많고(미국 의료보험 제도가 얼마나 엉망인지를 그들은 알까) 청년복지 또한 독립해서 부모의 지원을 받지 않는, 혹은 아예 사이가 나빠 의절하고 지내는 상황에서 부모의 자산을 이유로 혜택을 못 받는(이는 청년에게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부모 세대에게도 적용된다) 등의 여러 이유로 혜택을 못 받는 사람들이 있다며 오히려 다른 연령대 이상으로 청년 복지를 거부하고 혐오하는 사람도, 어딘가에는 있을 수 있다(인터넷 댓글에 주로 그런 사람들이 많기는 하지만 그 사람들을 다 따져 볼 수는 없으니 여기서는 일단 일반화는 자제하기로 한다). 따지고 보면 사회적 안전망이 대한민국은 그렇게 강한 편이 아니다. 선별적 복지라도 제대로 해내면 차라리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이러한 조세저항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보편적 복지이다.
최소한 상류층, 중산층에게 일정 부분 '내가 낸 세금 환급받는다'는 느낌은 줄 수 있으니까. 
덴마크나 스웨덴 같은 북유럽의 이른바 '복지 강국'으로 꼽히는 나라 사람들의 마인드가 딱 이거다. 세금 더럽게 많이 뜯어가기는 하지만 그만큼 또 국가가 주는 것도 빵빵하니까(대학 박사학위 취득까지 국가에서 지원해 주는데 말 다했지) 많이 내는 만큼 많이 챙김을 받으니 손해볼 것은 없다는 주의. 
 
 또 많은 우파들이 복지 때문에 국가 경제가 엉망이 된다며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같은 나라를 예시로 들고 오지만, 해당 국가들은 군부 및 독재 정권이 자신들의 외교 및 정책 실패의 만회, 오로지 정권 유지만을 위한 지지자 결집을 목적으로 국가예산을 마구잡이로 낭비한 것에 가깝지, 제대로 된 복지를 펼치는 나라가 아니다. 복지를 해서 국가 재정이 무너지는 게 아니라 성장과 분배의 불균형으로 국가 경제의 취약성이 대두되었기에 복지예산이 늘어나는 것이 올바른 순서이다.
 
저 유튜버의 주장은 쉽게 말해서 본말전도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자유시장경제를 중시하는 주류 경제학자들이 분배의 효율성과 형평성을 강조하면서, 빈곤층 문제를 절대 좌시하지 말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필요하다면 인프라 투자나 복지 등 국가예산을 투입해서라도 경기를 진작시키는 것을 이론 및 실증분석으로 증명하면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그리고 필요하다면 국가가 개입해서라도 경기를 진작시켜야 할 이유를 이론으로 실증하고 나아가 공산주의의 세력 확대를 틀어막는데 기여한 20세기 위대한 경제학자가 바로 존 메이너드 케인즈이다). 
 

스스로가 스스로의 적이 되어서

 
 이승만 정권 하에서 벌어진 학살은 오늘날은 물론이고 당시 기준으로도 지탄받을 행동이었다. 제주도에서 벌어진 4.3학살과 남한 지역에서 벌어진 보도연맹 학살이야 지리적 환경 또는 급박한 전황 때문에 당시에는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국군이 북진하는 과정에서 일으킨 학살은 영국 등 다른 우방국이 지원을 재고할 정도로 지탄을 받았다. 심지어 4.3학살과 보도연맹 학살도 서슬퍼런 이승만 정권의 독재가 끝나자 유족들이 피해를 호소하고 국회 차원에서 조사가 이루어졌다. 이런 움직임을 중단시켜버리고 남은 자료들을 대대적으로 은폐시켜 버린 것이 그 유튜버가 그토록 존경한다는 박정희가 일으킨 5.16 쿠데타였다. 조사가 제대로 진행되어 진상규명이 보다 완벽하게 이루어졌더라면 이승만은 지금처럼 극우 일각의 지지마저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이승만을 두고 이 유튜버는 "옛날 인물은 그 시대상에 맞춰 평가해야 한다."라면서 두둔한다. 그러면서 조선에 대해서는 '같은 인종을 노예로 삼은 나라', '형벌이라며 삼족을 멸한다는 야만적인 나라'라는, 그야말로 스스로가 스스로의 말을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 
 
https://youtu.be/wkSekZUnrwY?t=131

 
 예전에 미국의 한국역사학자 제임스 팔레가 1990년대 자신의 논문에서 조선의 인구 비중의 30% 이상이 노비였다는 점을 들어 조선을 노예제 사회라고 평가하며 이러한 노예제 사회구조가 조선의 근대화를 느리게 만들었다고 평가하는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원장 박태균 원장이 국방TV 역전다방에 출연하여 제임스 팔레의 주장에 대해 조선의 노비 제도는 그 결이 노예제와 상당히 다르다고 꼬집었던 적이 있다(링크한 영상 2분 30초부터 보시라). 한양의 대부분 노비는 공노비였으며 지방에는 노비가 많지 않았다는 점(광산이 필요한 북쪽에는 근대적 노동자, 남쪽에는 소작인이 있었다), 그리고 노예제가 가지는 대표적인 특징인 대규모 노예 운송 및 노예시장이 노비에게는 없었다는 점(노비가 고대나 미국처럼 '물건' 취급을 당하지 않았다), 그리고 노비 내부에서도 개인 사유재산을 가질 수 있던 외거노비와 그렇지 못했던 솔거노비로 나뉘어졌다는 점에서(박태균 원장은 심지어 조선 시대에는 자신이 자청해서 노비 신분이 되는 사람도 있었다고 지적한다. 노비가 되면 자연스럽게 부역에서 면제가 되니까) 노비제도를 노예제도와 같은 식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비판했던 것이다.
 
 저 유튜버가 이 박태균 원장이 출연한 역전다방 영상을 봐서 '조선은 같은 인종을 노비로 삼은 미개한 나라' 운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인종을 노예로 삼는 나라가 조선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같은 인종뿐 아니라 문화적으로 동질한 사람들을 피지배 예속민으로 부렸던 것은 조선과 같은 시대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였다(중국이나 일본 등 아시아 국가는 물론이요 유럽이나 아메리카 원주민들 사이에서도 이름이나 활동만 다소 차이가 있지만 노예제가 있었다). 농노제가 중세시대가 끝나면서 사라진 나라는 유럽에서도 잉글랜드 등 일부 서유럽 국가들뿐이였으며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에서는 18~19세기에 농노제가 소멸했다. 물론 노예와 농노는 다르긴 하나 농노와 노예를 구분 짓는 기준들을 적용해 보면 노비도 농노에 가깝다는 점과 당시 유럽의 농노들은 주인에 의해 법적인 권리가 종속되어 있었고, 농노가 도망치다가 잡히면 주인이 합법적으로 자신의 농노를 교수형시킬 권리를 보장하는 유럽 국가들이 많았다는 역사적 사실 등을 감안해보면 동시대 국가들이 노예제를 가졌던 것에 비해 조선의 노비제가 더 미개했다는 그 유튜버의 주장은 어불성설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노예 및 노비제를 포함한 역사상의 온갖 신분제는 그 형태와 양상이 다양한 이유로 형성되었다. 더군다나 현대의 민족 개념을 바탕으로 과거의 신분제를 평가하는 건 온당치도 못하며 애초에 말이 안 되며 상술한 그 유튜버 자신의 말에도 위배되는 주장이다. 

 '삼족을 멸한다'는 것도 조선 고유의 형벌이 아니라 중국에서 먼저 시작된 형벌이다. 조선에는 형식상 존재할 뿐 실제로 삼족을 멸하거나 삼족을 멸하는 것에 대한 조선만의 법을 만든 적은 없거나 드물다. 영조실록에는 영조가 '우리나라에는 삼족을 처발하는 법이 없다'며 삼족으로 유배시킨 자들을 모두 방면하라는 기록이 나온다. 

 
我國無三族之法, 豈可開無前之法? 許、裵兩逆三族散配者幷放。
우리나라에는 삼족(三族)을 처벌하는 법이 없는데, 어찌 전에 없던 법을 시행하겠는가? 허추(許錘) · 배윤명(裵胤命) 두 역적의 삼족으로 산배(散配)한 자는 모두 방면하라.

영조실록 119권, 영조 48년(1772년) 11월 18일 기유 6번째 기사

 
 일족을 주살하는 법은 삼국유사를 봐도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한 일길찬 대공의 구족을 주살했다는 기록이 있기는 하다. 일종의 연좌제인데, 나는 이 유튜버가 연좌제라는 제도의 불합리성을 비판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조선이라는 나라 자체를 싫어하고 혐오해서 저런 말을 갖다 붙인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서지 않는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연좌제, 즉 어떤 인물의 처벌을 그 인물의 일족, 가족이나 친지한테까지 적용시키는 것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이미 전근대에도 존재했다는 것이다. 삼족을 멸하는 형벌을 처음 만들었다는 중국부터가 그랬고, 서양에서도 마찬가지로 부모의 죄를 자식에게 연좌시키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았다. 
 

罰弗及嗣, 賞延于世
벌 주는 일은 자녀에게 미치지 않게 하고,
상 주는 것은 대대로 이어지게 하셨으니
《서경(書經)》 우서(虞書) 대우모(大禹謨)

 

죽을 사람은 죄를 지은 장본인이다.
아들이 아비의 죄를 받거나
아비가 아들의 죄를 받거나 하지는 않는다.
바로 살면 바로 산 보수를 받고,
못된 행실을 하면 못된 행실의 보수를 받는다.
에제키엘 18:20

 
 사실 전근대, 심지어 현대에도 그렇게 어떤 법률적 문제를 일으킨 대상자의 지역이나 친지까지 싸잡아서 비난의 대상으로 몰리지 않는 나라는 찾기 어렵다. 저 유튜버는 조선을 두고 '형벌이랍시고 삼족을 멸한' 미개한 나라라고 비난했지만, 프랑스만 해도 프랑스대혁명 이후 혼란 속에서 혁명정부의 실정 때문에 자신들의 재산을 잃은 것에 억울해하며 봉기했다가 실패한 것도 모자라 거의 광주항쟁 수준으로 처참하게 학살을 당한 방데 지역은 그 지역 전체가 '혁명의 적', '왕정복고를 외치는 반동주의자들'로 몰려서 20세기까지 매도당해야 했다. 제주 4.3 사건도 보도연맹 사건도 신천군 사건도, 나아가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시절 벌어졌던 그 수많은 간첩 조작 사건과 그 사건에 연루되어 그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빨갱이로 몰렸던 피해자들을 저 유튜버는 알고 있을까? '옛날 인물은 그 시대상에 맞춰 평가해야 한다.'라면서 '조선시대가 삼족을 멸했고 같은 인종을 노비로 부린 미개하고 야만스러운 나라'라고 비난하는 논리는 서로 성립되기 어려운데, 저 유튜버는 무슨 근거로 저 상충되는 논리를 가지고 와서 저렇게 자신있게 내놓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어설프다 못해서 코웃음 나오는 역사관

 
 저 유튜버는 이승만을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를 가져온 대통령으로 소개하며, 그의 오점들을 21세기 기준으로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는 주장부터가 이 유튜버가 단순히 '우파'라고 하는 차원을 넘어서 '극우'에 가까운 것도 모자라서 기본적인 팩트체크조차도 등한시하는 인물인가를 알 수 있다. 한반도에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소개되고 또 민주 제도를 구현하려고 한 시도는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헌장에서 이미 소개되었던 것이다(그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 누구인가 정도는 그 유튜버도 알 것이다). 또 대한민국 헌법에는 3.1운동으로부터 비롯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자유민주주의 헌정의 출발이라며 확실히 기재되어 있으며, 그 유튜버가 자유민주주의를 가져왔다 주장한 이승만조차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사용해 오던 대한민국 연호를 그대로 계승하면서 한국 민주주의의 기원을 자신이 아닌 1919년 임시정부로부터 찾았다.
 
 이승만은 해방 이후 5.10 총선거에서 동대문구 갑 선거구에 단독 입후보해 무투표 당선됐고, 제헌 국회의원의 결의로 제헌 국회 임시의장에 취임했으며, 대한민국 헌법 제정 이후 시행된 제1대 대통령 선거에서 국회의원의 선거로 대통령에 선출됐다. 제헌 헌법 제정 과정에서 이승만이 큰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나, 이승만이 자유민주주의를 들여왔다는 저 유튜버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애초에 이승만이 대통령이 된 것부터가 민주주의적 절차를 거친 것이기 때문에 그가 최초로 대통령으로 '선출'이 된 것이지, 이승만이 독단적인 결정으로 자유민주주의를 도입한 것이 아니라는 소리다. 
 
 이 유튜버의 압권 중의 압권은 광주항쟁에 대한 평가이다. 저 유튜버는 광주항쟁이 5월에 일어났고 전두환 정권은 8월에 수립되었으니 전두환에 대한 평가에는 영항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광주항쟁의 원인이 전두환이 일으킨 12.12 쿠데타이고 5.17쿠데타인데 주범이 바로 국군보안사령관,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 중앙정보부 서리를 겸직하며 신군부의 리더였던 전두환이었다. 12.12 쿠데타 있고 학생들과 시민들이 서울에서 가두시위 중 무력충돌과 유혈사태를 걱정해 철군한 서울역 회군 사건으로 인해 자신감을 얻은 신군부가 서울 대신 선택한 희생양으로 광주를 고른 것이다(5.18 당시 현장에 직접 있던 인요한 교수도 당시 전두환은 대통령도 아니었는데 광주 벽보에 전두환이 이를 총지휘하고 있다는 문구를 봤다고 증언했다).
 
 광주항쟁이 일어나고 그 항쟁을 처참한 학살로 진압한 근본적인 이유가 신군부의 계엄이었고, 그 계엄령의 총책임자가 전두환이었으며, 그 뒤 대통령에 취임하게 됐던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 전두환이 광주 학살의 주범이라는 사실은 자명한 일이라는 점에서 저 유튜버가 얼마나 허술한지는 답이 나온다. 애초에 단순히 시기적 논리로 접근하여 사건의 시기 이후 관련 직무를 수행했으니 연관이 없다는 식의 논리라면, 박근혜 행정부에서 문재인 행정부로 정권이 교체되던 시기 문재인 정부가 탄핵에 의해 당선 즉시 정부가 출범했으니 박근혜 행정부 시기 임명되었음에도 문재인 정부의 각료 임명 시기까지 해당 부처의 주무관으로 남아 있었다면 문재인 정부의 실정에 부역한 인물로 분류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 유튜버는 스스로 시장만능주의, 시장자유주의자이며, 본인 스스로 물질만능주의 성향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간섭 위주로 경제정책을 펼친 박정희를 지지한다. 정작 그 박정희 정부는 8.3 사채 동결 조치나 정가지정제도 등을 통해 경제를 살리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나라가 직접 나서서 시장경제를 제한하고 입맛대로 다룬 적이 많았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마디로 시장주의자들이 외치는 '제한된 정부'와는 정반대의 경제 체제를 밟은 인물이 박정희였다. 당장 저 동결 조치로 제일 이득을 본 부류는 경제적으로 빈곤한 시민층이 아니라 자회사를 세운 극소수의 자본가들이었고 반대로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부분의 시민들이 사채 동결이나 정가지정제도 등으로 피해를 보는 등 소위 계층을 위한 선별적 복지와도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제한된 정부'라는 개념은 정부가 완전히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라 나라로서 필수적인 활동은 하되 경제활동과 관련된 분야에 관해서만 시장경제에 맡기는 것이다. 그나마 민영화 사례가 존재하는 도로조차 일반적인 도로는 전부 국책 사업이며, 톨게이트를 설치할 수 있는 고속도로만 일부 국가에서 민영화로 운영되고 있고, 국방, 경찰 등의 치안권과 소방서 운영 등은 전적으로 나라가 당연하게 가져야할 권리이자 의무다. 저것들까지 전부 민영화의 범위에 포함시키는 순간 그건 제한된 정부가 아니라 무정부주의고 무정부 자본주의다. 한마디로 상술한 '국가가 개입해야 할 범위'는 '제한된 정부' 설에서도 기본 전제로 들어가는 항목이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29/2020032900779.html

[4.15 팩트체크] "의료보험 박정희가 했다" 黃발언 사실?

4.15 팩트체크 의료보험 박정희가 했다 黃발언 사실 박정희가 기틀 마련한 의료보험 노태우가 전 국민 대상으로 확대 김대중이 현 건보 체제로 통합 이명박이 사회보장 제도 가다듬어

www.chosun.com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19573.html

[신영전 칼럼] 의료보험은 ‘그들’이 만들지 않았다

이런 역사에도 불구하고 박정희를 ‘의료보험의 아버지’라 부르고, 여야가 합의한 국민의료보험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던 노태우를 ‘의료보험의 완성자’라 부르는 것은 역사 왜곡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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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극찬' 의료체계, 정말 '박정희 덕분'일까

박정희가 최초 도입은 맞지만…형평보다는 '특권'에 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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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고 보면 이 유튜버는 그렇게 선별적 복지를 싫어한다고 하면서, 박정희를 칭찬하면서 그 박정희 정부가 처음 도입하려 했다(고 우파 일각에서 주장하는) 전국민 의료보험은 뭐라고 하지 않는지 요상하다. 하긴 박정희 본인은 국민들이 아파도 돈이 없어 병원을 못 가는 상황에서 박정희는 지속적으로 “시기상조 아니냐”고 했고 ‘영국병’ 타령만 했고 사회보험 이야기를 꺼내는 전문가나 관료들은 곧바로 ‘안보’를 위협하는 자로 낙인찍혔다는 것을, 그리고 초기에는 그저 '특권'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의료보험을 '형평'으로 돌려서 지금과 같은 '전국민 의료보험' 체계를 만든 것이 박정희와 그토록 대립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는 것을 저 유튜버는 그나마 알고는 있었으려나? 
 
 그 유튜버는 그토록 '가짜를 싫어한다'라고 하지만, 본인 스스로가 대중의 신뢰를 얻을 만큼 경제에 대한 어떤 식견이나 이해도를 보여주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본인이 그토록 싫어하는 '가짜'와 다를 바가 없다는 점에서 문제다. 표현의 자유, "개인의 신념이 그렇다면 어쩔 수 있나" 정도 차원의, 개인 의견으로서의 '존중'은 몰라도 견해로서의 '신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신뢰는 투명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기가 내세우는 그 주장의 어떤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그냥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한다는데 니들이 뭘 어쩔거나" "니들이 뭐라고 해도 나는 내 생각 안 바꾼다" "내가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라" 이런 말만 되풀이하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는가. 썩은 나무로 조각을 할 수 없고 썩은 흙으로 담을 쌓을 수 없다는 말을 들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