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보살마하살은 다음과 같이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알에서 태어났든 태에서 태어났든 습기에서 태어났든 변화하여 태어났든
형상이 있든 형상이 없든 생각이 있든 생각이 없든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든 없는 것도 아니든
그 온갖 중생들을 내가 모두 완전한 열반에 들게 하리라.
이와 같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생을 열반에 들게 하였으나
실제로는 완전한 열반을 얻은 중생은 아무도 없다'고.
-《금강경》 대승정종품
부처님께서 냉소를 말씀하실 분은 아니시지만, 여래가 제도한 중생이란 없다고, 세상의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겠다고 발원할지언정 실제로는 완전한 열반을 얻은 중생은 아무도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여야 한다고 하는 것은 냉소냐 아니냐를 진작에 뛰어넘은 고차원이 느껴진다. 삼십이상이라는 신체적 특징에도 집착하지 말고, 대상에 집착하지 말고, 형색에 집착하지 말고 마음의 대상에도 집착하지 말 것을 말하는 경지는 세상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느냐 아니냐를 한껏 뛰어넘은 경지다. 적어도 나는 이런 경지를 가지고 매사를 대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아직까지는 없다. 그래서 아직도 인간의 추잡스러움을 믿고 가식과 위선의 인간성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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