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론(怪談論)
나는 호러물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무섭기도 무섭지만 너무 잔인하다.(고기 먹는 걸 좋아하는 놈이 피를 무서워하느냐고 웃는다면 그저 웃을 뿐이지만, 동물을 좋아하는 것과 고기를 좋아하는 것은 또 미묘하게 다르지 않나) 집에 강아지를 기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작중 동물학대가 묘사된ㅡ영화 <검은집>이나 <한국호러소설단편선> 중 '붉은 비' 같은ㅡ장면이 등장하는 작품들을 그렇게 선호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강자에게는 약하면서 약자에게는 한없이 강한척 하는, 살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서슴치않을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어둡고 잔인한 본성을 보는 것도 '유학자'를 자처하는 나에게는 사실 고역이었다.) 어쩌면 그 속에서 내 진짜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지만, 어쨌거나 호러물도 피가 튀고 살이 뭉개지는 잔인한 고어물에는 그리 눈독을 들이지 못하고, 대신 잔잔하게 사람 뒤통수를 치고 심장을 얼어붙게 만드는 그런 분위기를 다소 선호하게 된 것이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류의 영화나 소설에 '식상함'을 느낄 정도로 익숙해져버린 것이 아니냐고 자문하고, 그런가, 대답하는 나를 보면서 씁쓸해지기도 한다. 근자의 괴담이라는 것은 그 현상이 나온 '이유'보다 '결과'에 중점을 두고 봐야 한다고 한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이유'에 대한 설명도 납득이 가도록 곁들이지 못한다면 얼마나, 사람들 사이에서 '메아리'를 가질수 있을지 조금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인간이 가진 '공포'를 자극해서 충격을 주는 데는 역시 원인을 스스로 찾게 내버려두는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다만 내가 '도시괴담'이라 부르는 요즘의 이야기들 속에서 아무리 해도 읽어내기 힘든 것이 있다는 것은 아쉬운 일. 그건 이 세상의 어떤 작가도 담아내기 어려운 것이다.
"자불어괴력난신(子不語怪力亂神)."
공자는 괴이하고 초자연적인 힘이나 현상에 대해 일절 입에 담지 않았던 사람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라고 '괴담'이 없지는 않았겠지. 지금 전해지는 옛날 이야기도 그 시대에는 그 시대의 '도시괴담'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던 것임을 입아프게 설명할 것도 없다. 그런 '괴담'을 전하는 사람이 있으면 또 그 이야기를 갖고 '괴담' 이상으로 확대해석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공자가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딴 것은 단순한 가십거리일 뿐 세상에 교훈을 줄 만한 내용은 아무 것도 없다는 이유에서였겠다만, 반대로는 "니네가 잘해봐라 이런 'X소리'가 왜 튀어나오겠냐!"고 정부를 향해서 일갈하는 비판도 담겨 있었겠지.
당시의 괴이한 현상들, 그러니까 오늘날에는 그저 과학적이고 자연적인 현상의 일부로 생각하는 혜성이나 일식 같은 것은 그 나라가 얼마나 잘 돌아가느냐, 그 나라의 백성들에게 얼마나 풍족함이 돌아가고 있느냐를 굽어살펴본 하늘이 인간의 군주에게 내리는 일종의 '점수매김'이었다는 것이 오늘날 사학자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군주가 나라를 하늘의 뜻대로 잘 다스리면 하늘은 길조를 보여서 칭찬하고 왕조의 무궁함을 축복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하늘은 그에 맞은 흉조를 내려보내어 이를 엄하게 힐문하고, 나아가서는 군주의 자리 유지조차도 인정할 수 없다, 너를 심판하겠다 하는 강경한 경고 메시지까지 담게 된다.
백제 멸망 직전에 여러 가지 흉조가 있었다는 것은 《삼국사》와 《삼국유사》에 모두 기록이 있다. 사비하(금강)의 물이 핏빛으로 변하고, 서해 앞바다에 죽은 물고기들이 잔뜩 떠다녔는데 건져다 먹은 사람은 열에 하나없이 다 죽었다거나, 수도의 모든 개들이 약속한 듯 일제히 왕궁을 향해 짖었다거나, 개구리와 두꺼비가 시장에 떼거지로 몰려들어 우는 소리에 공포를 느낀 사람들이 앞다투어 도망치다 넘어져 깔려 죽는 사람이 속출했다는 이야기도, 시대만 다르다뿐이지 지금의 '도시괴담'에 옮겨놔도 전혀 손색없는 모티브들이다. 한 나라의 멸망을 암시하는 불길한 징조들.(어느 나라라고 이런 징조가 없었겠느냐마는 백제가 유독 그런 징조가 많은 이유는 우리 역사에서 백제가 가야 다음으로 수난을 좀 많이 당한 게 있다는 것, 단지 그뿐이다. 그리고 열거한 여러 흉조가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제로 나라가 멸망했다)
여기서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신령'이나 '요귀'의 존재를, 현재 우리가 '과학'이라 부르는 현상들의 원리를 이해하고 납득하듯 진실로 믿었던 전통 시대에는 그 '괴담'이라는 것이 왕조국가의 질서를 아예 통째로 뒤흔들 수도 있는 힘을 지녔었다는 것이다. 일종의 견제장치라고나 할까? 폭우가 쏟아지고, 가뭄이 오랫동안 계속되고, 곡식이 익지 않아 굶주리는 상황을 맞아서 국가의 재상이 '내 탓이오' 하고 물러나고, 왕이 알아서 반찬을 줄이고 한 것은 전근대에나 가능한 일이지 지금은 그런 일이 없다시피 하다. 과학과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귀신 같은 '저급한' 존재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당연히 '괴담'이라는 것이 지니는 사회적 파급력이 전근대처럼 왕조를 갈아치우고 하는 사태를 가져오지는 못하게, 힘이 위축되었다. 거기까지야 좋지. 문제는 그 다음이다.
괴담이라는 것도 결국은 그 시대 백성들의 의식 속에서 만들어진 인간의 창조물, 시대를 막론하고 힘없는 약자의 편에 귀신이 있었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려고 빌린 '귀신'의 존재가 현실 세계에서 지녔던 힘을 생각한다면 전근대와 현대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쉽게 말하면, 지금의 괴담은 대중이 독자이고 주요 타겟이지만, 옛날의 괴담은 위정자, 왕조국가의 핵심인물들이 상정독자층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근대의 '괴담'이란 통신이 발달하지 못했던 당시의 '민중언론'의 일부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의 괴담은 그저 괴담일 뿐이지. 말 그대로, 아무 근거도 출처도 없는 헛소리. 주술이나 종교가 맡아온 많은 역할들을 이성과 과학이 대신한 지금은 괴담이 나타나면 그저 듣기 좋은 가십거리에 불과하다. 찾아가서 검증해보고, 확인해보고 싶은 욕구가 들게 만드는. 한 시대를 반영해서 백성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위정자에게 전달해 무언가 바꾸게 만들 힘은 없는 것이다. 촛불문화제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을 정부는 그저 '괴담'에 현혹되어 나왔다고만 했지 알아서 뭔가 바꿀 생각이나 행동 따위 보여준 적이 없잖아? 100년 전이었다면 저런 반응은 상상도 못한다. 재상이 물러나고 왕이 양위를 결정하고, 안핵사니 안무사니 내려보내 위무하고 하기는커녕 저렇게 정부가 '괴담일 뿐이야'하고 무시해버렸다면 백성들은 그대로 죽창에 낫 들고 무장투쟁에 나섰을 것이다. 아니면 궁예나 견훤처럼 민중 속에서 성난 그들을 충동해 관청을 습격하고 관리를 때려죽이고, 왕궁을 불태우고 왕을 죽이고 아예 왕조 자체를 갈아엎어버리는 사태가 지금의 시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거꾸로 이야기하면 '괴담'이라는 음험한 형태의 '민중언론'이 그 힘을 상실했음을 보여주는 시대의 단면이다. 서구의 과학이니 이성이니, 합리니 하는 개념이 우리에게 준 것도 많겠지만 덩달아 잃어버린 것도 있다는 말은 여기에 있다고 보는 이유가 이것이다. 나아가 내가 요즘의 '도시괴담'이라는 것에 '가십거리' 이상의 흥미를 지니지 못하고 금새 '시들'해져버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요즘은 유튜브 같은 데에 괴담 유튜버들이 많이 생겨나고 또 많은 괴담들이 또 사람들 사이에 전해진다. 어떤 것은 이미 철지난 음모론임에도 아직도 이러나 싶어서 코웃음만 나오지만, 어떤 것은 유튜버의 입담 때문일지 아니면 내용 자체에 담긴 함의가 내게 와닿는 것이 있어서인지, 그런 것들을 그저 그때그때 그럴 수도 있겠네, 하고 생각만 하고 말았는데 앞으로는 조금씩 조금씩 기록해 둘 생각이다.